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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독일에서 봄이 온다고 느낄 때



날짜는 벌써 3월이라고 하는데, 

체감상 3월인지, 2월인지 잘 모르고 지냈다. 

기온은 여전히 좀 쌀쌀하고 밤낮으로는 아직은 종종

아래 위로 이빨을 부딪히며 떨기도 한다. 



문득, 오늘 독일에도 봄이 온다고 느꼈다. 



나는 원래 계절에 민감하다. 

그 말은 날씨가 꽤 중요한 사람이다. 



비 오는 날씨는 싫어해서 집에만 있고, 

눈 오는 날은 꼭 나가서 사부작사부작 눈을 밟아 주어야 하며,

안개가 자욱한 날은 안갯속을 걸으며 머리카락 끝에 맺히는 이슬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볕이 좋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거닐고,

바람 부는 날엔 작은 숲을 거닐며 바람 소리 듣는 것이 참 좋다. 



그랬던 내가 독일에 와서 날씨를 잊고 살았다. 

내게 얼마나 날씨가 중요한지 잊은 채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처럼 그렇게 다양한 날씨가 사실 독일에는 없다. 

특히, 겨울엔 비 아니면 그냥 흐린 날. 


왜, 한국은 그렇지 않은가.

흐린 날에도 그냥 우중충 한 날이 있는가 하면, 

흐려도 회색빛이 도는 뭉게구름이 몽글몽글하게 피어있어 운치가 있다. 

회색빛이 하늘에 돌아도 어떤 날은 짙은 하늘, 

어떤 날은 여튼 파스텔 느낌의 회색. 

그런데, 독일의 겨울은 그냥 무채색이다. 끝. 

검은색, 그리고 짙은 회색, 밝은 회색 끝. 



어쨌든 사람들은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동물이고, 

나 역시 예외 없다. 


오늘 문득 날씨 앱에 있는 날씨를 봤다. 

안 그래도 요 며칠 계속 해가 뜨고 꽤 길게 볕이 들었는데, 

의아하기도 하여 날씨 예고를 보았다. 


맙소사. 말도 안 돼. 
일주일 내내 햇.빛.

구름 하나 없이 맑고 맑은 것까지도 아니고 

그냥 하루에 짧은 순간이라도 빛이 있는 날이 독일에서는 얼마나 귀하단 말인가.

어쩌면 당연한 일도 이렇게 말도 안된다고 느껴지는게 독일의 겨울이고 날씨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바로 독일에 겨울이 올 때,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듯이 그렇게 봄이 온다. 


언 얼음 녹이듯 따뜻하고 포근한 봄이 지나면

곧 여름이 온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싫었던 여름인데, 

내가 이렇게 여름을 기다리게 되다니. 

신기하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신의 변화를 깨닫는 것 같다. 

사람은 조금씩 변화하며 산다. 


일 년에 네 번 늘 계절이 변하지만 항상 똑같지 않은 변화.

그렇게 나역시 늘 변해왔겠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의외의 변화. 


익숙한 것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했던 내가

이런 사소한 변화에 기분이 좋아진다. 

독일 날씨가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게 싫어하던 비도 여름도 기다려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