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타지 살면서 가장 섭섭할 때

가장 섭섭할 때라고 썼지만, 

사실 가장 속상할 때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이주하고 점점 한국의 가족들, 지인들과 연락도 뜸해지고

그렇게 점점 소원해지는 서울에, 한국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들.

몸이 멀어지니 점점 멀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문득 섭섭하고 새삼 속상하다.


일상에서 서운하고 섭섭한 것은 

한국 음식 먹고 싶을 때가 고작이다.

그런데 치킨이며, 보쌈같은 것을 먹는 일들이 

그냥 당연했던 그런 일상이 점점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다른 반증일 것이다. 


며칠 전 동생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데,


"언니.. 나 아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별거 아닌 감기인데,

그게 그렇게 짠한 거다. 


병원 다녀왔느냐, 

약은 먹었느냐, 귀찮다고 방에 누워있지 말고 병원 다녀와라, 

밥 잘 챙겨 먹어라, 그래야 낫는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런 잔소리뿐이다. 


조금 오래된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형부가 돌아가셨었다. 

한국에 다녀간 지 1년이 조금 못 되었을 때였고, 

우리 힘든 가족사에 함께 했던 형부라 정신적으로는 형부 이상이었고

어쨌든 형부였기보다는 그냥 우리 가족이었다. 


그런 형부가 하늘로 갔을 때도 나는 한국엘 가지 못했다. 

바로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었고.

구한다고 해도 이미 다 정리된 뒤라, 

그냥 다음에 들어오란 식구들 말에 독일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두고두고 한이 되고 미안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중에 누가 아프다고 하면 

그게 사소한 감기일지라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내가 힘들거나 속상할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없는게 그저 서운하고 섭섭했는데, 

지금은 내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힘들고 속상할 때, 

그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맘이 더 크다.


허황된 줄은 알지만, 그래서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누군가 초능력을 준다면 난 주저않고 순간이동 능력을 갖고 싶다. 


어쩌면 이제는 지금 내 남편이 있는 여기가 내 가족인데, 

그게 가족인데 가족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삼십 년을 넘게 같이 지지고 볶고 살았던 시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형부를 그렇게 보낸 것처럼

혹시 내 언니나 동생, 부모님 아플 때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가끔은 일상에서도 목이 멘다. 

그런데, 어쩌랴, 이런 것들 모르고 선택한 삶이 아닌데.. 

어제, 오늘, 독일에는 연신 해가 떴다. 

귀하고 귀한 독일의 겨울 볕이 이제는 제법 길어졌고 낮도 어느 틈에 길어졌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은 그런 볕조차도 슬퍼 보인다. 


사실, 타지에 살면서 내가 가장 섭섭할 때가 아니라,

타지에 사는 내게 내 가족과 지인들이 제일 섭섭할 때가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남편이 참 얄밉다. 

오늘 밤 먼저 잠든 토마스 씨, 괜히 퍽퍽 한대 쥐어박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