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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밥 먹는 모습에 반하고 처먹는 모습에 헤어진다.

밥 먹을 때 꼭 여기저기 흘리며 먹어서 나의 앞자리는

항상 지저분하다. 무언가를 먹거나 요리를 하고 나면

옷이 어딘가에 또는 얼굴이나 머리카락 어딘가에 꼭 그 흔적이 남아있다. 


너는 밥을 어떻게 먹길래 머리카락 뒤에 밥풀을 붙이고 있느냐,

너는 요리를 무엇으로 하길래 등 쪽으로 간장이 튀었느냐,

나 몰래 초콜릿 먹은 거 다 티 난다! 이마에 초콜릿 묻었다. 아느냐,


나보다 내 동생은 더 심한데, 제부도 그랬고 우리 남편도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귀엽다며 예쁘게 봐주었다. 


나는 조금 조심성이 없는 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덜렁거리고 치밀하지 못하다. 

그런 나를 우리 엄마는 칠칠맞지 못하다고 하셨다. 


"저, 칠칠이를 누가 데려가느냐..어휴.."


평평한 길 위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가끔 넘어지기 일쑤고

잘 걷다가 스텝이 꼬여서 혼자 꼬꾸라지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스타킹 올만 나가는 게 아니라 살까지 함께 긁혀서 

언제나 종아리 여기저기에 피딱지가 없던 적이 없었으며,

집 안에서 혼자 걸어다니다가 문고리에 걸려 옷을 찢어 먹거나 다치기 십상이다. 

초등학교 때 가방도 없이 실내화랑 도시락 가방만 들고 등교한 적도 있고,

혼자 침을 기도로 삼켜서 기침도 자주 한다.


나는 이렇게 사는 데 불편한 적이 없었고 그냥 웃기다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그런 내 모습이 어른들이나 엄마가 보시기엔 영 단정치 못했던 거 같다. 

나는 그래서 내가 너무 칠칠맞아서 정말 결혼을 못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토마스 씨를 만났다. 

그보다 나이도 많은 어떤 여자의 이런 모습이 그에게는 그저 허술해 보였는데,

치밀하고 계산적이기로 유명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본 적 없는 모습이었기에

그는 나와 다행히도 사랑에 빠졌다. 




(적당한 사진이 없어서 대충 그림을 그렸는데;;;;;; 발 그림 주의 ㅠㅠ)



이렇게 밥을 와구와구 퍼먹어도 그저 좋다고 해주었고


문고리나 서랍 손잡이에 옷이 걸려 혼자 허우적대도 재밌다며 그런대로 좋아해 줬다. 


나무, 문, 건물, 신호등 따위에 정면충돌 하는 걸 보고는 

사막에서도 나무를 찾을 수 있는 여자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변했다. 

결혼해서 같이 살며 자주 보게 되니 어느 순간에는 걱정하고 불안해하더니,


이제는 걱정, 불안 그런 것보다 화를 내는 것이다. 

눈에 불을 그렸는데, 불같이 보이질 않네. 음..

불 같이 화내는 그 모습이 상상 이상으로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이어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늘 사랑해주던 남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로 화내는 그를 보면 서운하기도 했고

은근히 내가 조심해주면서 성격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또 섭섭했다. 


그런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조심한다고 조심이 되는 부분이었다면 반 칠십 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을까. 




  "밥 먹는 모습에 반하고 처먹는 모습에 헤어진다."  



드라마 "애인 있어요"에서 시청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사이다 캐릭터로 유명해진 너는 진리, 극 중 '최진리'라는 캐릭터의 대사였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대사였다.

어쨌든 극 중 캐릭터를 통해 하려고 했던 말은,

사랑에 빠지게 했던 상대의 어떤 점이 나중에 너무  단점이 되어 사랑을 식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이론적으로 이해는 해도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살아보니 어떤 말인지 같다.


생각해 보면, 남편을 만나기 전에 연애를 할 때 반복되었던 패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까탈스러운 나에게 그런 허술한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가 

결국에는 다들 화내고 싸우고.....

남편도 그랬고 사람들은 내가 조심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나도 나름대로 항상 그러지는 않아도 조심을 한다. 

가령, 운전 할 때나 다림질 할 때나..,


나도 남편의 어떤 부분에서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이에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면 굳이 바꾸어주길 바라지도 요구하지 않는다. 

애초에 어느 한쪽이 변화를 요구하거나 바라는 순간,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는 것 같다. 

포기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사람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내 생각과 입장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이런 부분 때문에 싸우지는 않는다. 

아마도 지난 연애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은 현실이라고들 하는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나 집안과 집안에 얽힌 문제들과 육아 등 많은 부분들 때문이기도 하고.

매일 타협하고 조율하고 해결하는 인생의 장기 프로젝트, 그게 결혼인 것 같다. 

인종, 나이, 직업을 다 떠나서 결혼은 내가 얼마나 철없던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누구나 비슷한 그저 하나의 삶이고 현실이다. 

결혼에 대해 로망까지는 아니었지만, 망상을 했던 적이 있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 원래는 웃기다고 생각하고 웃긴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내 성향은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회귀본능이 있는 것 같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