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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기분도 그러한 데 갈 곳이 딱히 없을 때

한국에서 나는 그럴 때 카페에 갔다. 

창가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창문 밖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멍하니 앉아서 밖의 풍경을 구경했었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드물게 술도 한 잔씩 했다. 


무엇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스트레스가 무지막지하게 쌓여 주체 안될 때는 한강에 갔다.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이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고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도심에 나무나 공원은 별로 없지만, (요즘엔 공원이 많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갈만한 산들이 많았고 조금만 나가면 쉽게 한강 둔치에 닿았다. 


강변을 따라 하염없이 걷거나 자전거를 탔다. 

이런 것들이 여유치 않을 때는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밤, 가까운 대교 하나 찾아서 천천히 강바람 맞으며 걸었다. 

걷다가 중간쯤에 멈춰서 오가는 사람이 없을 땐,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보거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술을 잘 못해서 이렇게 마음을 달랬다. 


이런 것도 여유치 않을 땐, 

내가 있는 곳이 강을 넘지 않은 곳이었다면, 무작정 걸었다. 

종로에서 홍대입구까지 걸어본 적도 있고,  안국동에서 수색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다. 

미아 3거리에서 광화문까지도 걸어보고, 강남역에서 압구정까지도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면 그만이었기에 항상 걱정 없이 걸었다. 


이런 것들 중 하나, 그날 내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씩 평상심을 되찾곤 했다. 


그런데, 독일에선 이 중 그 어떤 것도 이전처럼 할 수가 없다. 

이전과 같을 거란 거, 기대하지도 않고 당연한 거라는 건 알고 있는데, 

이전의 1할도 비슷한 방법으로 내 마음을 갈무리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지금도 여전히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살다 보면 참 자주 간사해진다. 

이 고개만 잘 넘으면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면서, 

막상 잘 넘어가면 그때 마음을 금방 잊어버린다. 

늘 옆에 있을 때, 늘 거기 내가 있었을 때,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간절한 어떤 것으로 변하는 것도 한 순간이고

간절한 것이 내 것이 되었을 때 감사했던 마음도 금방 잊는다. 


여기 와서 얼마 안 되어 토마스 씨와 우연히 찾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를 혼자 가고 싶은데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그 호수를 찾았다. 

며칠 엄청난 비를 쏟아내고 오늘 오후에서야 조금 갠 하늘 사이로 빛이 조금씩 호수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이곳을 이따금씩 찾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