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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날 울린 남편의 엉뚱함.


이 전에 글을 쓰면서도 자주 썼던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의 날씨다. 

독일 날씨는 정말 천방지축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특히 겨울이 되면 유독 심하다. 

아침에 해가 들어도 곧 우중충해지거나 장대비를 쏟아내기 일쑤며,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가 잠깐 멈추는 사이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다가도

곧 다시 우중충해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나고 평생을 살아온 독일인들도 겨울이 되면 우울우울 열매를 먹은 듯 침울해진다. 

그러니, 유학생이나 나 같은 이주민들은 오죽할까. 

외국인들은 겨울만 되면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다짐한다. 



"이 지긋지긋한 독일의 겨울 날씨. 

내가 올 겨울 지나고는 반드시 독일을 떠나고 말테다."



이런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할 때쯤이면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이 피고 파릇파릇해진 나무들 사이로 

겨우내 사무치게 그리웠던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지난겨울 지독했던 우울한 날씨 따윈 금세 잊고 반가운 햇볕을 즐기다 보면, 

그렇게 봄을 지나 여름이 오고, 

은근슬쩍 오는 둥 마는 둥 했던 가을도 지나 갑자기 우울해지면 그때서야 자각을 하곤 한다. 



"언제 겨울이 왔지?"



그리고는 다시 이를 갈며 내년 봄엔 꼭 떠날 생각을 한다. 

독일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반복을 하며 사는 것이다. 

참 사람 단순하다. 


여러 번 썼지만, 

내가 독일에 온 첫해는 독일에서도 40년 만에 최악의 일조량을 자랑했던 악명 높은 해였다. 

이런 악랄한 날씨에 익숙한 독일인들 사이에도 자살이 급증했을 정도였으니...

12,1,2,3월까지 볕이 들었던 날이 열흘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 종일 볕이 든 것이 아니라, 하루에 잠깐이라도 볕이 들었던 날이 말이다. 

그럼 눈이라도 펑펑 오던가. 딱 한번 눈이 오는 것 같더니 그냥 비가 오거나 우중충하기만 했다.

그때 내가 정말 지독하게 우울해서, 독일에서 못 살겠다고 매일 남편에게 우는 소리를 했다. 

내가 눈으로 눈사람 만드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독일에 와선 미니 눈사람도 못 만들겠다고 별거 아닌 걸로 죽는 소릴 했다.

착한 우리 남편은 그런 내 불평에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늘 받아줬다. 



"조금만 기다려. 곧 봄이 올 거야. 

봄이 오면 독일에서 살게 된 게 아주 조금은 좋다고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놈의 봄은 언제 오냐고!!!!! 그 전에 난 우울해서 죽어 버리고 말 거야."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독일에도 봄이 왔다. 


4월의 어느 따뜻한 봄 날, 

일찍 일어난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여보 일어나. 일어나요. 빨리~"



어색한 한국어에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깨웠지만, 나는 더 자고 싶어서 화를 냈다. 



"슬푸다. 일어나요. 빨리."



잠결에 화낸 것이 미안하여 억지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등 떠밀려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문을 열어젖히며 남편은 한쪽 손을 펼쳐 보였다. 




"짜잔! 눈 와요. 눈. 예쁘다!"




부엌 창문으로 가득 하얀 꽃이 가득 만개해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마치 눈꽃이 핀 나무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왜요. 예쁘다. 안 예쁘다?"


"아니. 예뻐. 정말 예뻐. 고마워."



그때 왜 멍충이처럼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혹독한 첫겨울을 보내고 이제는 그런대로 겨울을 잘 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우리 집 앞에 필 눈꽃을 기다리며 오히려 설렌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집 부엌엔 눈꽃이 피었다.


(+)) 사진으로 담으니 생각보다 안 예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