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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독일에서 커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질문

  어쩌면 당연히 조심해야 하거나 조금 민감한 문제인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하거나 받았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살던 문화에 살다가 독일에서 실수했던 내 경험이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는데, 독일에서도 커플들이 결혼을 잘 안 한다. 


아니, 살아보지도 않고 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결혼을 해?


  결혼을 한다 해도 결혼 자체를 한다기보다 제도적인 편의나 혜택에 의한 경우도 많다. 보통은 서로 조금 알고 지내고 사귀며 지내다가 함께 동거를 시작하는데, 동거에 대한 인식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동거도 연애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동거 없이 결혼을 한 커플에 대해 조금 의아해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유럽처럼 당연시하는 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경험이 있는 경우 여자는 결혼하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식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세대에서 동거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혼전 경험에 대해서도 편하게 바라보 않는 편이 아니었다. 나의 이런 반응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 대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인정은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살아보지 않고 결혼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정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독일인들의 생각이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하는 나이가 늦어지게 되는데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나 보장되는 것들이 나쁘진 않아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기도 하다. 물론, 유럽이라고 뒷말이 없고 미혼모에 대해 모두가 관대하건 아니지만, 한국에 비한다면 타인에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고 덜 눈치 보며 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거 중 혹은 교제 중에 아이가 생긴 것이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관점과 생각들이 확실히 자유분방하다. 

  이러한 독일의 문화에서는 커플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당연한 현상인데, 이런 커플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너희는 언제 결혼할 거야?
아이 계획은 없어?


   동거 중이거나 교제 중인 연인에게 결혼을 언제 할 거냐, 또는 결혼할 거냐는 질문을 아주 사적이고 조금은 예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의 없다는 표현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데, 예의 없다라기 보다 그 질문이 무척 민감한 사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 자체를 매우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해서 버럭 화를 내거나 직접적으로 그런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주는 경우를 보게 되는 일도 드물다. 겉모습부터 완전히 다른 외국인인의 질문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독일인들은 알아서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하면 안 되거나 피해야 하는 이유는 두 번째 질문과 비슷한 이유이다. 아이에 대한 계획은 쉽게 물어서 안 되는 이유가 '혹시나' 커플 중 어느 한쪽의 문제로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그 흔하지 않은 경우가 공교롭게도 내가 질문한 그 사람의 사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질문만으로 이미 그들의 아픈 상처를 들쑤신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늦게 갖아야 하는 상황인데 그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 큰 스트레스 일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결혼도 그렇다. 둘 사이에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굳이 묻는 것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처럼 한쪽은 결혼하고 싶은데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 또한 덮어둔 상처를 굳이 들추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내가 결혼한 시점 즈음에서 우리 시누가 지금의 남자 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벌써 몇 년째 함께 살고 있는데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두 커플이 매우 잘 어울린다. 둘의 성향과 취향이 많이 비슷하고 성격적인 부분에서도 반대로 대립될 만한 부분들이 서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바람직한 커플의 모습이었다. 시누는 남자 친구가 사는 곳으로 이주를 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이미 정착하고 있었다. 너무 잘 어울리고 안정적인 커플인데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의아해서 언젠가 내가 언제 결혼할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이 나를 조금 나무랐다. 질문 당시에도 남편이 대충 눈치를 보내서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묻거나 답을 굳이 듣지 않고 대충 얼버무려 넘어갔었다. 내 질문은 그들이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전제에서였고 언젠가 시누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기에 가까운 사이에서는 물어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가능하면 묻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물론, 시누 커플이 그 이후에 나를 나무랐거나, 당시에 질문을 곤란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는 했기에 미안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묻거나 무례하게 참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자만, 독일에서는 시부모님이나 시누, 누나나 동생처럼 가까운 가족이라도 그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제삼자가 이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 처음엔 이런 부분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 더 살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 보니 지나친 이 배려의 문화가 어느 순간 편하게 느껴졌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고 다소 강하게 표현하고 독일에서 이것이 법으로 정해졌거나 관습처럼 지켜오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와 통념상 암암리에 지켜주는 에티켓 정도이다. 

  이런 부분이 결혼 기피나 저출산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조금 예의를 차리고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런 분위기가 참 좋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보다 내 생각이나 행복이 우선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의 이면에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하겠지만, 결혼이란 것이 독일에서는 살면서 꼭 겪어야 할 통과 의례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