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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이름에 따른 불편함

처음 독일로 넘어 온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으로 3년을 꽉 채워 넘기고 4년차에 접어들었다.


서른을 넘기고도 한동안 시간이 빠르다고만 생각했는데

얼굴에 하나 둘 늘어가는 잡티와 주름들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깨닫게 된다.

불혹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어렸을 때는 '불혹' 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연륜이나 이미지가

꽤나 무겁고 올드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코앞에 닥치고 보니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 이때 즈음 부터 육체와 정신의 연대에 괴리가 생기는 것 같다.


독일로 이주하고 결혼을 하면서

만 2년을 넘게 꼬박 고민해 온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전혀 진전이 없다.


앞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수는 없으나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나는 계속 독일에서 살게 될 것인데

이름으로 인해 생활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사실 불편한 것에 비례해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 이상이기에
아직도 이름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나름 흔하지 않은 성에 비해 이름은 꽤 흔한 이름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라서 특별한 별명이 없었는데에 반해,

성은 별명 붙이기 쉬운 별명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은근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것들도 잠시.

그 이후로는 살면서 내 이름에 큰 불만은 없이 살았지만

그렇다고 무척 이름에 애착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처음 미국에 어학 연수라는 것을 갔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내 이름의 받침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게 무척 불편하고 귀찮았다.
매번 고쳐주고 알려주는 일이 말이다.


당시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첫음절을 지나가는
사람 부르거나 우리나라의 저기요, 쯤의 말인 Hey!! 로 장발음 하거나,
뒷음절과 함께 부를때 중국이름처럼 발음하기 일쑤였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고 귀찮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던 거다.

당시 별생각 없이 책에서 뒤적거려서 찾아낸 꽤나 올드하고 유치했던

이름 하나를 급조해서 그 이름을 쓰기도 했다.


그 뒤, 맘에 들던 영문식 이름을 하나 갖고 업무적으로 사용했고
꽤나 오래 그 이름을 사용했다.


꼭 의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조금 불편했고

생각보다 귀찮았으며 은근한 스트레스 였다는 이유로

2009년 첫번째 카미노에서도 그 이름을 아무 생각없이 그 이름을 썼다.

그래서 그때 알게되선 십여명의 내 친구들은

지금까지 나를 그때의 영문식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내년 여름, 비자 갱신 시점이 다가오면서

새삼 다시 중요하고 귀찮은 화두가 되었다.


한국에서 계속 살거라면 당연히 이런 고민은 안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살기 시작했고 독일은 보통(또는 대부분) 결혼 후,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 이름을 변경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절대적인 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을 이루고 자녀가 생기고 그 자녀가 학교를 다닐 때

부모의 성이 다르면 재혼 가정이 이라든가 엄마가 계모라든가 하는

오해가 생기기 쉽고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이 될수도 있다.


또 병원이라든가 어딘가 단체로 가족이름을 적거나 호명이 될때

가족들은 다 같은 알파벳 라인에 함께 있는데 부인만

남남(?)처럼 동떨어져 있어서 같은 그룹이 못된다거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들 외에 다른 일들도 있을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남편의 성으로 완전히 성을 바꾸거나

여자의 성을 남편 성의 앞이나 - 을 이용하여 한 단어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혼인신고를 하면서 한 번, 그리고 향후 한 번

총 두번 이름을 변경할 수 있다.

나는 시댁 식구들과 남편이 내 이름을 버리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아서

혼인신고 당시 큰 고민 없이 그냥 이름 변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살아보니

또 다시 은근한 불편함 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일을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 이메일 서신을 주고 받을 때
내 이름과 성을 바꾸기,

이름의 앞 음절만 이름으로 부르기,

뒷음절을 영어식이 아닌 독일식으로 발음해서 우스꽝스러워지기,

(예를 들면, 소영 -> 조융)

나를 남성으로 인식하기,

(영어의 미스터처럼 Herr 로 칭하는 거다. 당.연.하게,,

이를 테면, 미스터 김씨 처럼.)

등등..


이러한 일들이 한 두차례 발생하고 마는 일회성 문제라면

이렇게 화두가 되지도 않을 거다.

매번, 항상 이름이 불리거나 쓰이는 일에서는 항상 발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은

관청일을 볼일이 자주 없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하루에도 여러번 매일을 주고 받을 일이 생기는데

새로운 상대와의 이메일에 항상 소개를 해야하는 것이다.


기타 다른 여러가지 문제들도 있는데,

 

그 중에 내가 제일 스트레스 받고
가장 불편하면서 싫고
너무 귀찮은 일은 내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발음 하는 것을
일일 고쳐주는 일이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틀린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해주고 싶어하기 때문에
최소한 서너번의 수정을 하게 된다.


상상해 보라,
다섯 명 정도 한번에 인사를 하면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000 입니다. " 하고

013 이요?

아니요. 000 이요.

아, 003 이요?

아니요. 000 입니다.
아!! 010 이군요.
아. 아니요. 000입니다.


이런 반복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처럼 나는
괜찮아요. 됐어요. 하면

" 아니에요. 난 당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해주고 싶어요" 하며

정정을 요청하는 거다.

그렇게 다섯번!

물론 내이름을 정확히 발음해주려고 애쓰는 점은 너무 고맙고

또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좀 피곤하긴 하다.


이미 혼인신고를 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2년이 넘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에 대한 고민과

과연, 정말, 결국엔, 급기야, 이름을 변경할 것인가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왔다.


일일이 다 설명하고 열거하기에 힘들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들로 결국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바꾸려고 보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거다.

마음에 딱히 드는 이름도 없고
마음에 들어서 시험적으로 불려보다 보면 또 싫고.


우연 인지 운명인지 내 세례명이 독일 성녀의 이름이라

그것으로 한다 했더니 남편과 시댁에서 모두들 결사 반대.

1900년대 이전에 쓰던 이름이며,

모든 이름들이 유행을 따라 돌고 돌지만,
그 이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모두들 확신하는 거다.

(우리나라로 치면 점례, 순례, 말자 와 같은 올드 네임)

또 막상 이름을 바꾸려고 결정하고 보니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들기도 한다.


이름까지 바꾸자니 내 성을 살려두고 싶고
성을 살리자니 이름만 바꾸는 것에 의미가 없다.


남편 성만 따르고 내 성을 버리자니

내 이름마저 바꾸기 싫고


이름 안바꾸고 남편과 내성을 모두 살려두자니
어감도 이상하고 모든 이름 스펠링을 하나하나 불러줘야하는
이름으로 인해 '매우', '더 더 더 ' 불편해 질 게 뻔하다.

이름도 성도 그냥 싹 다 바꾸자니
내 과거를, 나 자체를 부정하고 바꾸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또 든다.

바꿀 이름에 내 과거의 성과 이름 그 어느것도 없는 걸 상상하면
나를 잃고 정체성 마져 잃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름과 성을 모두 독일식으로 변경한다면
사람들이 내 이름을 먼저 듣고 나중에 만났을 때
독일어가 어눌한 외국인이라면 굳이 없을

실망감(?) 같은 걸 줄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내 고민은 다시 원점.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정말 이름을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
바꾼다면 어떤 이름을 바꾸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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