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키기 힘든 약속이 있다.
"우리 다음에 함께 다시 꼭 오자. "
예전에 한국에 살 때, 처음 파리를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파리를 꽤 좋아했던 동생에게 다시 오자고 했지만
동생은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했다.
"내가 여길 언제 다시 또 와보려나."
그런데 우연하게도 한국에 사는 동안 두 번을 더 다녀갔었고
이후로 독일에 살면서 두 번을 더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언제 다시 한국에 들어갈는지.."
한번은 남편과 처음 만나서 우리를 돈독하게 했던 케밥을 다시 먹으러
스페인 루고에 4년 만에 간 적이 있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이렇게 약속하듯 중얼거리게 되는 그 말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토마스와 만나고 서로 그리워서 중간 나라인 인도에서 만나 2달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도
우리는 늘 그랬다.
"여기 다시 오자."
천 원짜리 은반지로 처음 커플링을 맞춘 이 도시에 다음에 또 오자 했지만,
그 이후로 인도 근처도 가 본 적이 없다.
대가족 틈에서 내 방 없이 살아가다가 27년 만에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던,
미국의 유진(Eugene)이라는 작은 도시.
할머니가 위독해지는 바람에 어학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했던 그 곳.
쉐어하는 형식의 방이 닭장처럼 붙어있는 낡은 나무집이었지만,
언제나 그리웠던 그곳.
짐을 싸고 쫓겨오듯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꼭 다시 오자 했지만,
그렇게 또 1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더이상 그 낡은 나무 건물이 남아있지도 않을 것 같다.
여전히 '다음에 다시 여기에'는 지키기 힘든 약속인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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