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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언어 파괴자 독어

독일에 온지 만 3년을 꽉 채워 지난 이 시점.

나는 나의 꿈으로 가는 수단인
글쓰는 것을 못하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는건지 안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이제는 어떻게 담아내는 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좀 처럼 잘 늘지 않는 독어 때문에

울면서 배우고 조바심이 났고

의식적으로 한국어 사용을 자제했다.


덕분에 한글로 된 책도 읽지 못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독일어로 생각하고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어로 읽고 모두 독어로 해도 늘까말까 였다.


영어에 비해 많은 노력을 요하지만

반면에 언어가 흡수되는 속도는

현저하게 느렸다.

내가 언어에 소질이 없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 일까 싶어서
내 자신에 자신감 조차 잃었었다. 


그렇게 독어라는 언어를 1년 반정도 배우고
어느날 독어로 꿈을 꾸고 독어로 잠꼬대를 하면서도

여전히 초딩 같은 독어를 쓰는 나를 보았고

평생 안고 가야하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어느새 조바심과 스트레스가 많이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두려움은 있다.


웃긴 건 영어에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영어도 다 잊고 바보 영어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영어는 완전히 형편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바보 영어가 된것이다.

완전한 외국어였다면 잠시 잊었더라도 돌아왔을텐데
아주 영영 잊어 버린걸 보면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많이 창피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이자 오만이었다.


바보 영어. 초딩 독어. 어눌한 모국어.

그것들이 그 반증인 셈이다.

그리고 우울하지만 이것이 지금 나의 현주소.


어쨌든 요즘 그래서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또 쓰기가 싫다. 심지어 일기 조차.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간단하다. 내가 만족하지 않기 때문.
내 글이 끄적거리는 일기조차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내 꿈이 너무 많이 멀어졌지만
어쨌든 난 포기한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내가 잘 할수 있을까.
잘 할수 있을거야.



덧. 기초회화가 가능했던 내 스페인어는 흔적 조차 없이 사라졌다.
내 스페인친구들과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다 했던 시절이 있는데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깜쪽같이 사라졌다.
독어는 언어 파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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