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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점점 애매해지는 정체성 그러나,

연말에 동생이 다녀갔었다. 

이번엔 가야지, 이번엔 가야지, 하면서 벌써 3년째 한국을 가지 못했다. 

지독히도 볕이 들지 않는 독일의 겨울이 시작되면서 

늘 그리웠던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가라앉았던 흙탕물이 다시 흙먼지로 뒤덮이듯, 

그렇게 순식간에 그리움이 짙어지더니 이내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여러 명과 그룹 지어 친구를 맺거나,

넓고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한둘씩 깊고 끈끈하게 인연을 이어갔던 나에게

친구들, 가족과 내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 지나온 모든 시간이 아득해졌다. 

언제 내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했던 적이 있었나 싶게..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것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음을,

예상했던 뻔한 과정이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본래 의지대로,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다 보니 

늘 이런 쓸데없는 감정에 발목이 잡혀서 허덕이게 된다. 


그래서 동생을 불렀다. 아니, 선뜻 비행기 삯을 지급해줄 주제도 못되면서 

제발 나를 한 번 만 방문해달라고 졸라보고, 애원해보고 짜증까지 부렸다. 

내 동생의 방문은 이웃집 놀러 오듯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내 동생도 이번 방문이 첫 유럽행이었는데,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는 옆집 놀러 온 거 마냥 맛있는 것을 해먹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수다도 떨고 그러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유럽까지 왔는데 독일에만 있는 게 미안해서 

파리로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몽마르뜨에 있는 샤크레 꾀르(Sacré-Cœur de Montmartre) 성당)



동생과 함께 여행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랐던 적이 크게 두 번 정도 있었다. 


동생과 다니면서 악세서리, 옷, 가방, 등등 이것저것 많이 구경하면서 다녔는데, 

내 동생이 내게 꾸지람하듯 항상 했던 말이 있었다. 



"언니, 취향이 왜 그래?"

"언니, 그거 넘 촌스러워"

"원래 그러지 않았잖아? 취향이 어딘가 이상해졌어!"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정말 그거 사고 싶어?"



우리는 자매이기 때문에 비교적 직설적으로 대화하는 편이고

또 우리 식구 특성상 빈말 절대 못 하는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의 이런 말들은 은근 신경이 쓰였다. 


삼십 년을 넘게 함께 살던 동생이 느끼기로는 

예전에는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 물건을 보는 취향이나 안목이 뭔가 독일스러워졌다는 것이다. 



"독일스러운 건 어떤 건데?"



라고 묻는 내게 딱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무언가 은근히 화려한 듯하나 알고 보면 은근 촌빨 날리는 거라고 해야 하나. 

ㅠ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파리에 서너 번 여행을 다녀왔던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유럽에 살고 있다 보니 웬만큼 멋있고 대단한 것이 아니면 

이전처럼 엄청난 감동이 몰려오고 하지도 않는다. 


동생이 예쁘다고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걸 보며

평범하다고 느낀 것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음식을 먹을 때도 내가 아무리 한국 음식 없이 못 산다 해도 

나는 맛있다는 것도 대부분 동생 입맛에는 영 아니었다. 

입맛도 변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조금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파리라는 유명한 여행지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정말 멀리서 보아도 딱 한국 사람은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다들 예쁘고 잘 꾸미고 다녔다. 

특히, 모두 비슷한 화장에 비슷한 스타일이긴 했지만 예뻤다. 

화려하게 꾸민 것은 아니지만 화사하게 빛이 났다. 


이미 나와 띠동갑 이상은 어린 사람들이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단번에 한국 사람이라고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꼭 젊음만은 아니었을 터, 

그제야 동생이 내 취향이나 안목이 변했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향, 입맛, 성격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사는 곳에 맞추어 어느 정도 타협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독일에 산지 햇수로 벌써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미 이곳에서 10년 20년, 또는 그 이상 살아오신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 시간은 나를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독일인 될 수는 없다. 

누가 시켜준다 해도 별로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럴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내가 혹시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어서 독일 여권을 갖게 된다고 해도

나는 독일 여권을 가진 독일 시민일 뿐이지 독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취향이 바뀌고 입맛이 변해도 

난 여전히 한국 드라마가 더 좋고, 한국 유머가 더 재밌으며,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속이 메슥거리는 토종 한국인이다. 


나는 이렇게 이제는 완전히 어색한 한국인이 되어

한국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닌 이상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런 것이 서글프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다만, 아이러니한 이것이 조금 씁쓸하다. 


올해 여름에는 이름을 새로 바꿀 계획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내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부르기 쉬운 이름을 앞에 붙이더라도 내 이름까지 버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아니라, 

그냥 독일에 있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