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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내 시월드 (feat. 토마스네 가족)

어려서부터 시월드에 대한 나만의 로망이 있었다.

뭐 현실적으로는 거의 힘든 로망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그런 로망.


그냥 시댁 식구들이랑 아주 친하게 지내며

시부모님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란 호칭을 아끼지 않고

살갑게 굴고 가끔은 남편에 대해 험담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면 같이 맞장구 쳐줄수 있는 그런 시월드.


물론, 나 또한 시월드에 잘 할 수 있을 거란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애교 없는 내 성격이

어려서부터 어른들 앞에서는 없던 애교가 은근히 생겼던 걸 보면

어른들에게 이쁨 받을 때

알 수 없는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 속에서 내 로망에 맞는 시월드를 찾기란.

음.......................

쉽지 않다. 가 아니라 거의 희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국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건 아니다.


물론 사회와 전반적인 사람들의 마인드가 다른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시월드가 우리나라랑 크게 다르다는 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의 시월드 만만치 않기도 하다.


우리 토마스 씨는 나에 비해 애교가 넘쳐 흐르며

그 넘치는 애교를 그 동안 어떻게 숨기고 살아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내 앞에서 주체 못 하고 풀어낸다.


연애할 때도 살짝 애교가 있는 성격이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차고 넘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_-


토마스 씨는 성격도 매우 긍정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전반적으로.


그런데 이런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예민함.

무언가 시간의 촉박함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요하는 상황이 되면 그렇다.

가령, 요리할 때, 운전할 때, 시험공부 할 때, 등등.


한때는 이 예민함이 부주의한 내 성향과 크게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결혼해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만큼.

굉장히 커다란 고민거리였고 더구나 일상에서 쉽게 생길법한 에피소드였다.


그럼에도 결혼까지 결정하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는 와중에 토마스 씨는

단 한 번도 그 싸움이나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나는 싸움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누구나 싫어하겠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그 자체로 너무 큰 스트레스였고 피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싸우면 한 달 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고 기진맥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런 싸움이 함께 가까이 지내면서 매우, 아주, 빈번히 발생하는

일상이 되어버리니 나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런 나에 비해 토마스는 그 상황에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외려 그런 부분 때문에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고 여겼다.


즉, 문제를 서로 어딘가 구석에 담아두거나 숨겨두지 않고

겉으로 꺼내 보이며 다른 것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커플이 완전하게 어우러질 수는 없는 거라고.


물론, 싸움 없이도 너무 잘 맞아서 매우 매우 잘 지내는 천생연분 커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천생연분은 아니었던 걸로. ^^;;


그래서 그는 그런 싸움과 해결해 가는 과정을 항상 반겼다.

그리고 피하고 싶어하는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피하면 그때를 넘길 수 있지만 언젠가 다시 그 문제를 마주 해야 한다고.


이러한 그의 부분이 꽤 긍정적으로 느껴졌고

실제로 우리가 가까이 지내면서 싸우고 부딪히던 부분들은

결혼을 하고 신혼이었던 2년을 포함에 3년간 최고였다.

이러다가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주 열심히 열정적으로 싸웠다.

-_-


그리고 지금은 매우 안정기로 접어든 것 같다.

사소한 다툼에 있어서 우리만의 빠른 해결법을 갖게 되었고,

커다란 화 앞에서 상대방에게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도 찾았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아주 평범한(?) 싸움을 한다. 이따금씩.


그리고 내가 결혼을 결정하게 된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시월드.

그중에 우리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를 만나고 알고 지내면서

위에 언급했던 토마스의 단점 속에 긍정적인 부분이 숨겨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느꼈다.

(자세하게 쓰기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예민함도 그렇긴 하다^^;;;)


시어머니는 체형도 작고 아담하고 인상도 꽤나 인자하시다.

얼굴도 작고 목소리도 조곤조곤 여성스러우신 분이다.

시어머니가 가장 크게 화가 난 걸 본 것은

큰소리로 화를 표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전부였다.


토마스에게 물어보니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소리 지르는 어머니를 본적이 없다고.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댁 식구들이 시어머니를 빼고 모두 남편과 비슷한 성향이라

많이 놀랐었다.


그러니까, 시누와 시아버지도 남편 못지않은 예민함이 있다.

(어쩌면 완벽함을 추구하거나 잘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스트레스 일지도)

그런 남편과 아들, 딸 사이에서 소리 한 번 지른 적 없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라면, 나 같은 다혈질이라면,

소리를 질러도 수백 번은 지르고 굴렀을 것 같다. -_-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어느 날 2박 3일 동안 아주 열심히 싸웠던 적이 있었는데,

문제가 아주 사소한 것이어서 더 지치고 더 힘들었었다.

그런데 그 2박 3일 중간에 시댁에 방문할 일이 생겼다.


우리는 시댁에 비교적 자주 방문을 하다 보니 피할 수 없었다.

적당히 핑계를 대서 내가 안 간다고 하기도 힘든 애매한 상황이었다.


문앞에서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붉히다가

시댁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웃고

사이 좋은 척 코스프레 하는 우리. -_-


그는 그런 게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좋고 싫은 거 분명하고 없는 소리 하지 않는 내 성격에는

그런 우리 모습(적어도 내 모습)이 그렇게 가증스럽고 가식적일 수가 없었다.


그날도 그렇게 연기(?)를 해야 했는데

시어머니를 보자 내가 울컥했던 거다.


우리 엄마, 아빠, 내 언니, 내 동생, 한국에 내 절친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수천 킬로미터 '사랑'하나 보고 온 나한테

어쩜 그럴 수 있나 싶고,

자기는 이렇게 맘만 먹으면 쉽게 쉽게 가족들, 친구들 볼 수 있는데,

난 싸우면 갈 데도 없고,

어디 하소연 할 수도 없고,

내가 시댁에도 이렇게 잘하는데....

하면서 서러움이 폭발 한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니,

시어머니가 놀라셔서 작은 방으로 나를 잠깐 데리고 가셔서 물으셨다.

왜 그러느냐고.


순간, 내가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하소연하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만 나쁜 외국인 며느리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보다 서러움이 더 커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는 " 토마스가..." 하고선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그런 내 모습에 우리 시어머니가 내 마음 다 아신다는 듯이,

나는 말도 제대로 다 못 했는데,

내가 토마스의 예민함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신 거다.

그러면서,

다 이해하지만 바뀌길 바라면 너만 힘들고 너만 상처받는 다고 받아들이자고. 하셨다.

그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에게 작은 팁도 알려 주셨다.

그게 정답이거나 베스트는 아니었지만, 최선이었고 효과는 괜찮았다.


이런 이야기 여기 쓴 걸 알면 그가 불같이 화낼지도 모르는데,

나에게는 이 일이 두고두고 너무 좋았고 감사했다.

당신 아들 입장에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신 것.


이날 이후로 우리는 그 정도의 다툼은 더이상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답답하면,

시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토마스가 양말을 휙휙 벗어 던진다.

집에 있으면 나를 너무 괴롭힌다. 등등 뭐라고 하면

시어머니는 옆에서 맞장구치시면서 아빠 닮아서 그런 거라고 덧붙이신다.



다른 이유도 여러 가지 있는데,

이런 비슷한 긍정적인 부분들이 결혼하고 싶지만 고민했던

내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위에 언급했듯이,

나와 남편은 시댁에 아주 자주 방문한다.

(자주 방문하는 것도 내 로망이었다.

가까운데 살면서 자주 자주 '편하게' 방문하는 것)


특히 남편은 집에서는 공부가 안된다고 하여

시댁을 도서관처럼 드나들며 공부를 하기 때문에 더 자주 방문한다.

(실제로 시누가 시댁 이층집에 살다가 현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2층이 비어있고 아무도 없으니 공부하긴 딱 맞은 환경인 셈)


함께 방문하는 건 일주일에 최소 한번, 많으면 주에 서너 번도 방문한다.

시댁에 가면 주로 티타임을 갖거나

시어머니가 하진 점심이나 저녁에 우리가 끼어서 식사를 얻어먹고 수다를 떨고 온다.

가끔은 내가 한식이나 아시아음식을 해서 같이 나눠 먹기도 한다.


모든 독일인이 그런 건 아닌데

다행히 우리 시부모님은 내가 하는 요리들을 아주 좋아하시고 잘 드신다.

제육볶음, 부대찌개, 불고기, 김밥, 된장찌개, 떡볶이, 부침개 등등.


특히 시어머니는 매운 음식을 전혀 드시지 못하시는 분이었는데

내가 해드린 음식들이 아주 좋다고 매운 음식 드시는 것을 굳이 연습까지 하신다.

게다가 토마스도 못 먹는 신김치도 너무 맛있다고 냉장고 쟁여두고 드신다.

그것도 햄 치즈를 곁들인 빵과 함께. -_-


토마스도 김치를 아주 좋아하는 데

그런 토마스도 까다롭게 신김치나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는 못 먹는데

시어머니는 그런 것도 다 좋다고 하신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느끼는 것이

토마스의 멘탈이 참 건강하다고 시댁을 통해 느낀다.


나도 나중에 우리 아이를 키우면 성격에 단점이 있어도(누구나 단점은 있으니)

정신 만큼은 건강하게 잘 키우고 싶다.

구김 없이.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둘 다 혹은 적어도 한쪽은 건강한 멘탈을 지녀야 할 텐데..

나는 내가 그렇지 못해서 남편 만큼은 시댁 만큼은.

평범하고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정이길 항상 바랐었다.


물론 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싫은 소리 한번 없이, 망설임이나 반대 없이

우리의 결혼과 결혼생활을 지지하시고

도와주시는 시댁에 진심으로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다.


아, 그리고 여기 문화가 우리나라랑 달라서

이름을 부르거나 애칭을 부르는데,

나는 mama, papa, 라고 시부모님을 부른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내 이름을 항상 정확하게 발음하시려고 한다.

(그런데도 항상 틀리지만 ^^;;)


물론, 내가 특별히 사랑받아서  또는

내가 좀 특별한 케이스라서 그런건 아니고

보통 다른 사람들도 결혼하면 시부모님 이름을 부르거나

엄마, 아빠의 호칭을 남편과 공유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좋다. 남다른 것이 아닌 점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편한 마음으로 마마, 파파 라고 부를 수 있는 시월드가 아직은 좋다.

그리고 계속 좋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도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겠지..


정말이지 다행이고 감사하다.




* 사진 : 시댁에서 바비큐 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