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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외국인 남편의 한국어

지금 내가 아는 남편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토마스씨의 모습이다.

연애하는 동안에는 생각보다 애교가 많다 였는데,

결혼하고 보니 숨겨온 애교본능을 완전 폭파시키고 있다.


그런 반면 남편이 아는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 모습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조금 더 심한 모습이다.

연애하는 동안에도 생각보다 애교가 없다 였는데,

결혼하고 보니 숨겨놓은 애교까지 모두 소진한 나머지

더 무뚝뚝한 마눌이 되었다.

-_-


우리 토마스씨는 한국어를 어설프게 배워서

아주 기초적인 단어 또는 내가 자주 쓰는 단어들 위주로 구사하는데

일단, 자기가 안 단어는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어설프게나마 조금 웃긴 에피소드를 종종 연출해 준다.



그중에 하나.

귀찮아 vs 괜찮아


일단 본인에게는 두 개의 단어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한다.

집에 내가 있으면 날 귀찮게 하는 재미에 공부할 수 없어서

집에서는 잘 공부하지 않는데,

간혹 집에 있으면 허그충전이 필요하다면서 좀 귀찮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마다 내가 귀찮다고 일부러 한국어로 말했고 그렇게 그 단어를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괜찮아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막 귀찮게 하면, 내가 말한다.

" 아우! 귀찮아!!!! "


그러면, 그는 묻는다.

" 귀찮아? 괜찮아?"


다시 내가 대답한다.

"귀. 찮.아.!!!!!!!!!!!!!!!!!!! "


그러면, 그는 알았다는 듯이,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괜찮아~"


이런 장난 무한 반복.

(음성지원을 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 -_- )




두 번째, 싸 & 비싸


남편은  밖에서 우리가 대화할 때

남들이 우리 단어를 얼핏이라도 듣고

우리 대화 내용 또는 테마를 아는 것이 싫단다.

그래서 몇 개 안 되는 한국어를 특히 밖에서 아주 열심히 활용하는데,

특히 '싸'와 '비싸'라는 단어.


한번은 시엄마랑 셋이 전등을 보러 갔는데

나는 너무 예쁘다고 독일어로 연신 감탄을 연발했고

옆에서 토마스씨는 계속 한국어로


" 비싸. 비싸. 비싸. 진국이 비싸! "

(진국이..란 단어의 토마스 어원은 http://varamizoa.tistory.com/trackback/24 여기로)


시엄마는  아들이 계속 한국어를 쓰니

내게 슬쩍 와서 물어보셨다.


" 쟤 한국어로 자꾸 뭐라는 거니? 비싸다고 하는 거지? " 하심. ㅋ


외국어 욕심 좀 있으신 시엄마도 하고 싶으셔서

아들 옆에서 같이 비싸. 비싸 하면서 주인과 점원 옆을 지나셨다.

(시엄마 발음은  ㅆ이 안돼서, 비사. 비사 비사 하시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 ㅠㅠ



세 번째. 외국인 & 왜그래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자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고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연애 때 스스로는 쑥스러워서 사랑한다 보고 싶다.

같은 감정 표현의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을

매우 쑥스러워했던 그였기 때문에.


이제는 습관이 된 건지 결혼하고 그가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주아주 표현을 잘하고

또 뜬금없이 자주 표현해서 놀랍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변화에 매우 기분이 좋다.


내가 그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런 자의에 의한 변화가 좋다.

원래 나는 상대방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나 역시 강요받는 것을 무척 답답하고 못 견뎌 한다.

내가 변화 시킨것은 아니지만 내 질문의 습관이 일조했다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한 번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고

대답해준 남편에게는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그도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반복하는 내 질문이

귀찮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에 관한 에피소드다.


내가 " 나 사랑해?"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늘 "응" 또는 " 네네네" 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내가 "왜?" 라고 묻는다.


나> 왜?? 왜에에에에??

토> 왜 그래??

나> ???!??!?!???? 아니야. 다시. 왜에??

토> 왜국인! (외국인)


이라고 대답하며 넘기며 어이없어하는 내게.

덧붙여 그는 말한다.

언제나 바보 같은 질문에는 바보처럼 응답해야한다고.


이제는 내가 묻지 않아도 자주 표현해주는 남편이지만,

이 습관을 왜인지 버리지 못하겠다. 그냥 유지하고 싶다.

언젠가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우면 더 좋은 아이디어로 나를 웃게 해줄지도 모르니.




+))  덧붙인 사진은 롱디 기간에 남편이 한국어를 배울 때

키보드에 한글을 오려 붙인 것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시아마켓에서

라면이나 이것저것 사다 모아둔 상자를 자랑했던 날이다.

언젠가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다시 한국어를 배우겠지...

비정상에 나오는 외국인들처럼은 바라지도 않는다. ㅋ

그러나 나는 강요하는 성격이 아니니

느긋하게 기다려본다. 그 언젠가를.








세가지 밖에 안 썼는데 쓰다보니 시간이 늦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