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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궁금한 것이 많은 남편

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남편에게 곧잘 하는 이야기다. 

질문이 많은 남편은 가끔 보면 굉장히 순수한 면으로 느껴지고 어떤 때는 또 괴짜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꼭 호기심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독일에서는 외화의 더빙이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라 내 독일어 향상을 위한 수단이라는 명분으로 넷플릭스를 매달 결제하며 보기 시작했다. 독어 더빙은 빅뱅이론에 나오는 라지 특유의 인도식 영어 발음과 악센트를 그대로 독어로 구사해 어색한지 모르고 본 적도 있고, 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조나단(Jonathan Rhys Meyers)의 목소리처럼 독어 더빙이 원래 배우의 목소리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어색하고 이상하기는 하다. 어쨌든 가능하면 실제 배우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목소리로 더빙하고 그 배우의 말하는 습관, 억양까지 고려해 녹음하기 때문에 독일 넷플릭스에서 외화는 영어 같은 원어, 독일어 더빙이 거의 항상 같이 제공된다. 그리고 영어 자막, 독일어 자막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경우에 따라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자막도 제공된다. 


그렇게 열심히 넷플릭스를 이용해서 문화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남편이 쿵후 판다를 함께 보자고 해서 쿵후 판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 궁금해진 남편. 

왜 중국과 판다가 연관이 있나로 시작해서 그의 호기심은 어느덧 한국의 단군신화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어쩌다가 단군신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시작은 판다였다. 


단군신화를 이미 조금 알고 있던 남편은 그동안 몹시 궁금했으나, 늘 잊고 있어서 묻지 못했던 단군 신화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편의 질문들 혼돈이었다. 


"왜 때문에 백두산이지?"
"왜 하필이면 곰과 호랑이인 거지?"
"왜 100일 동안이지?" 
"왜 쑥과 마늘인 거지?"


남편에게는 곰과 호랑이의 대결이 불공평한 시작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질문에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여차저차 설명을 할 수 있었지만, 그를 완전히 납득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곰은 돼지처럼 다 먹을 수가 있다고, 육식도 하지만, 잡풀도 잘 먹을 수 있지만, 호랑이는 육식만으로 연명하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짜증 나. 호랑이 슬퍼요. armer Tiger(불쌍한 호랑이)"


정말 진심으로 슬퍼하는 남편을 보니 좀 어이가 없었지만, 한 번도 의구심을 품어 본 적 없던 내게는 신선한 불평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편의 엉뚱함. 


"원래는 착한 호랑이에게 상을 줘야 해."
"왜 호랑이가 착해?"
"육고기만 먹는 호랑이가 비록 100일을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 며칠 함께하는 동안 곰을 잡아먹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나마 버틴 게 기특하지 않아?


호랑이가 너무 착해서 곰도 안 먹고 그냥 도망쳤기 때문에 곰이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곰은 호랑이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호랑이도 그에 응당한 보상을 받았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모든 것이 공평하게 이루어졌다면 한국의 단군신화도 달라졌을 거라는 남편.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다 남편에게 호랑이도 상을 받았다고, 

그래서 곰은 그냥 단군신화로 남고 호랑이는 십이간지에 합류했다. 

라고 했는데....ㅎㅎㅎㅎ

그 뒤에 남편의 이어지는 질문;;; 

그럼 닭은? 소는? 원숭이는?



어쨌든 교육의 차이일까? 성향의 차이일까? 다소 엉뚱하지만 이런 다각적인 시선과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우리에게도 아이의 연이 닿는다면 남편의 이런 부분은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