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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따라쟁이 남편

남편을 만나기 전, 어렸을 때 충분히(?) 연애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커플 룩, 커플 신발, 무언가 커플로 공유해본 적이 없었다. 

스무 살 꽃띠도 아니고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는 아니었는데, 

똑같은 티셔츠는 아니어도 같은 소품이나 옷을 한둘 쯤 갖고 

있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토마스 씨가 한국에 와서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절대 '지양'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커플 룩, 커플 신발 등등이었다. 

거리에 쌍둥이 같은 남녀가 쌍둥이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외국인인 그의 눈에는 영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쇼핑을 가서 같이 맘에 드는 것은 자기가 사지 않거나, 

자기가 꼭 사고 싶은 것은 나에게 사지 말라고 종용했다. 

꼭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렇게 나오니 왠지 더 하고 싶은 발동이 걸리더라. 


그래서 내가 우기고 우겨서 샀던 같은 디자인의 신발인데, 

색만 다른 것으로 샀던 것이 있다. 


화살표가 문제의 그 신발 ㅎ

나도 정말 베이지를 사고 싶었는데 늘 양보하는 남편이 이 신발은 

그렇게 마음에 쏙 들었는지 절대 사지 못하게 했다. 

나도 너무 맘에 들었던지라 그럼 색이라도 다르게 산다고 굳이 우겨서 샀다. 

그리고 그 이후 토마스 씨는 내가 신은 날 절대 신지 않았다고 한다. ㅋㅋ


그런데,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살고 보니, 

토마스 씨는 은근히 따라쟁이다. 

지금은 개의치 않고 같이 산 신발 잘 신고 다니기도 하며, 

내가 휴대폰에 건 비밀번호를 따라서 바꾸기도 한다. 

비번이 누르기 귀찮아서 패턴으로 잠그면 꽤 복잡한 패턴도 

연습해서 익힌 다음 자신도 똑같은 패턴으로 잠근다. 


젓가락으로 밥 먹는 게 나름 멋있어 보였는지, 

처음 젓가락을 배운 날 한두 시간 쌀알 집는 연습을 하더니,

지금은 곧 죽어도 밥은 젓가락으로 먹는다.

젓가락으로 먹더라도 남은 밥알은 숟가락으로 깨끗이 다 먹어야 좋은 거다, 

라고 해도 죽어도 젓가락을 쓴다. 

아마도 내가 적어도 한번은 남편 앞에서 젓가락으로 싹싹 비워 먹었던 적이 었었지 싶다. 

그래서 시댁에서 밥으로 식사하면 토마스 씨 밥그릇만 밥알 덕지덕지.. -_-


그가 제일 많이 따라 하는 것은 역지사지 공법이다. 

한번은 다툴 때, 그가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를 쓰기에 

순간 약이 오른 내가 한국말로 나오는 대로 막 떠들었던 적이 있다 


"아, 짜증 나, 왜 저래. 흥. 웃겨. 잘났어. 정말, 아빠 보고 싶다. 

치사 빤스 같은 놈. 나니까 너 데리고 살지. 늙으면 갖다 버릴까 보다. 짜증 나."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떠들다가 밑천이 떨어지면 노래 가사를 읊기도 했다, 

그랬더니


"왜 그래? 아빠 왜요? 짜증나면 왜요? 짜증나면 없어요.  빤쓰는 있어요."


라고 한국말로 받아치더니 더이상 아는 단어가 없으니, 

독어로 왜 자기한테 한국어로 욕하냐고 하는 거다. 

니가 먼저 독어로 욕하지 않았느냐. 

이제 들어보니 너도 기분 나쁘냐고 했더니 자신은 독어로 욕한 적 없다며

자신이 한 말을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단어로 니가 말하면 그게 나쁜 말이 아니어도 

특히 우리가 다툴 때는 다 욕으로 들려. 그러니까 쓰지 마. 

나도 방금 욕한 거 아닌데, 니가 모르는 한국어 막 쓰면 

'모르니까' 기분이 나빠지잖아. 

이런 식으로 싸움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음......맞아요. 네네네." 


그리고 며칠 후, 

깊은 꼬린내가 진동하는 치즈를 토마스 씨가 너무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정말 냄새가 진국이라 온 집안에 순식간에 퍼져서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반은 장난으로 온 집안의 창문을 열며 유난스럽게 굴고 헛구역질 시늉을 했다. 

눈치를 보니 좀 서운해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발동한 장난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내 발냄새랑 막 비교하며 조금 더 놀렸다. 

나의 실수였다. 


다시 며칠 후, 

김치찌개가 너무 생각나서 신김치를 꺼내 조리를 하는데, 

마침 토마스 씨가 귀가했고 코를 틀어막으며 난리인 거다. 

너는 비위가 좋다는 둥, 어떻게 썩은 배추를 먹느냐는 둥, 

이렇게 집안에 베인 김치는 2박 3일 빠지지도 않는다는 둥, 

우리는 몰라도 분명 밖에 나가면 우리한테 김치 냄새가 날 거라는 둥, 

막 웃으면서 던진 말이었는데 너무 서운한 거다. 

며칠 전에 치즈로 내가 친 장난은 까맣게 있고 그런 토마스에게 

서운해서 울컥하니 그새 남편이 말을 바꾼다. 


"genau so wie du immer( 정확하게 니가 했던 대로(나는 했다) or 니가 항상 이랬잖아)"


그제야 내가 했던 실수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나쁜 아내, 속좁은 아내, 소심한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 남편은 어린아이 같아서 

내가 쓰는 말을 모두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때문에

내가 나쁜 말 부정적인 말을 자주 쓰면 그도 배운다는 게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나란 사람 또한 그렇다. 

모를 줄 알았다. ㅋㅋ 정말 안일하고 위험한 착각이었다. 

우리는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현명하지 못하고 배울 것이 많다.

(급 반성 모드 ㅠㅠ)


그리고 지금 토마스 씨는?

며칠 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삐빠빠 룰라, 삐빠빠 룰루~~" 이 노래를 

며칠 동안 흥얼거리고 있다. 


"삐빠빠 룰라~ 삐빠빠 룰루~삐빠빠 여보~ 빠빠밥줘~ 띠띠리리~~"


개그 본능 있는 따라쟁이에 응용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