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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이상하게 숫자 세는 외국인 아내


토마스 씨는 가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혼자 빵빵 터지고 좋아한다. 

그리고 정말 당황스럽게도 그런 부분에서 그는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나는 그래서 그가 참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고 고맙게 생각한다. 

애교 없는 아내에게서 이렇게 스스로 귀여운 부분을 찾으려, 아니 만드는 그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다. 

애교 없는 여보라 미안해. 남편. ㅠㅠ



어느 날, 한국어로 숫자세는 공부를 하던 남편. 


"하나,둘,셋,넷,다...다....닷, 엿, 일...??"

"몰라요."  (어렵다는 말임)

 

어렵다고 하기에 한국 사람들도 그렇게는 잘 안 센다하니 다시 숫자를 센다. 


"일,이,샴,샤,오,륙,찔,빨,구우,일씹,,,,,,"


일십은 뭐냐고 물으니, 십이란다. 이십,삽십이니까, 십도 그냥 십이 아니고 일십이라고.

뭐,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일십,일백, 일천,에서 일은 생략한다고 말해줬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가르쳐 주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내게 손가락으로 숫자를 다시 세어 보라고 한다. 


일부터 셀 때,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구부리고 

주먹이 된 다음에 6을 셀 때는 다시 새끼손가락부터 피니까 이상하다고 한다.


다들 나처럼 10까지는 이렇게 세지 않나? 


그럼 너가 세어보라며 남편에게 시키자, 

그는 주먹을 엄지부터 펴며 10까지 세는 것이다. 

헐.........-_-


"여보, 당신 이상해!"




독일 숫자 세는 방식은 한국의 수화 세는 방식과 비슷한데, 

양손을 다 사용하고 주먹에서부터 1일 세서 6부터 반대쪽 손으로 옮겨가서

10까지 세고 나면 양손이 펴져 있다. 


네가 틀리고 내가 맞네, 네가 이상하고 내가 맞네, 그러면서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결론은 한국에서는 나처럼, 

독일에서는 토마스 씨처럼 센다는 걸로 결론을 지었다. 

그런데, 나만 이상한 사람을 만들어 놓고 놀리려고 했던 

토마스 씨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실망한 모양이다. 

유심히 내 손가락을 살펴보더니 드디어 무언가를 또 하나 찾아낸다. 



"여보, 당신의 숫자 3은 이상해"



숫자 3을 만들 때, 내가 만들지 못하는 모양이 있었다. 

절대 엄지와 새끼를 가지고 3을 만들 수가 없다. 나는 ㅠㅠ

이렇게 3을 만들려고 하면 엄지와 새끼가 만나질 못하고

겨우 만나면 손가락을 곧게 펼 수가 없으며,


 

이렇게 생긴 3을 만들려고 해도 나머지 3개의 손가락을 곧게 펴질 못한다.



손가락이 짧은 것인지..

유연성이 없는 것인지..

오른손의 새끼와 엄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큼이나

서로 만날 수 없는 물리적인 장애가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운 그 모양을 나는 못한다. 


그나마 왼손으로는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이 일자로 펴지 못하는 상태이긴 하지만 

얼추 보통(?)의 3이 만들어지긴 한다. 

그래도 여간 힘을 주고 힘든 게 아니라 그냥 나는 편하게 내 방식대로 3을 만든다. 

이렇게;;;


다행히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거나 보여 줄 일이 없어서 다행인데, 

한동안 남편은 나의 이 조금 다른점을 가지고 놀리며 좋아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버럭 하면, 자기는 너무 귀여워서 그런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토마스>  여보, 몇 개?

나>        응, 3개 (하며, 3을 만들어 보인다)

토마스>  OK 아니에요. 왜 OK에요? 숫자 아니에요. 없어요~~~~

나>        -_- 그저 웃고 만다. 



우리 여보에게는 손가락에 관련된 슬픈 전설이 있어. 

우리 여보 손가락은 숫자 3을 만들지 못하지. 불쌍한 손가락(arme Finger).

하지만, 그 손가락은 언제나 OK를 하지. 

내가 그녀를 놀려도 손가락은 언제나 OK를 하지. 

불쌍하지만, 그래도 참 착한 긍정적인 손가락이지. 



이제 이것도 일상이 되어서 놀리거나 웃지는 않는데 

대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며 신나 한다. 


간혹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났는데

아직까지 독일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다들 남편처럼 나를 신기하게 보나 보다. 


"여보, 여보, 얼른 와 봐, 와서 손가락으로 3을 해 봐!"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