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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불혹

악한 사람이 있었고, 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치관이 뒤집히고 또 뒤집혔습니다. 진짜와 가짜가 똑같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진실의 언어가 있었는가 하면, 거짓의 언어도 있었습니다. 깨끗함이 더러움이 되었고, 더러움이 깨끗함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언 20여 년이 지나, 저는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 무렵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서서 그 당시를 생각한다면, 저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그 격렬한 시대를 탄생시킨 변화의 에너지는,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가져온 것인가 하고. 

그 당시에 아주 대단한 큰일로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정말, 스무 살, 그 때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마흔 이란 것은 어디 쯤에 있는 것이고, 어떤 기분이며, 어떤 모습일까. 

사실, 끔찍하게 늙어버린 아줌마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독 내게 천천히 느리게 흘러갔던 것처럼 시간만 빠르게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내 속도로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 때론, 무척이나 답답한 모습으로.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시간에 비해 눈에 보이게 느리게 가는 나와의 괴리에서 오는 혼란도 나름 산란하다. 

때론 좋지만, 마냥 좋기만 하지도 않다. 

그렇게 나 역시 물리적 시간을 피하지 못하고 그 나이에 이르고 말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제법 덜 아줌마스럽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내 삶은 여전히 청소년처럼 방황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실망스러운 것은 나도 내 상황도 아니다. 그냥 삶 그 자체가 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 뻔한 걸 보고나니 그랬다. 

실망스러울 만큼 엄청난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달려온 인생에도 결국 남은 것이 없는 허무함이 조금 섭섭한 것이다. 

나이가 주는 부담, 스트레스 우울함은 사실 딱히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는 할 수 없는 '어떤 일' 들은 때때로 내게 커다란 두려움처럼 자각된다. 

지금이 아니면 이후에 힘들거나, 의미가 없는 그 일들이 내 인생에서 최대한 미뤄지고 미뤄진 후에 도착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상황에서 오는 부담감일 뿐이다. 


미뤄 놓은 방학 숙제를 개학 전에 끝내야 하는 부담감처럼, 

개학하고 하는 방학 숙제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아니 자유의 의지로 개학 후에도 마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더 이상 방학 숙제로의 의미는 아니지 않나. 

내가 처한 이 상황은 방학 숙제처럼 내 의지 만으로, 또는 내 게으름 때문에 미루어서 생긴 것이 아니기에 조금은 안타깝다. 


나는 지금 다시 상상하고 그려본다. 

내가 스무 살 때에 마흔 살처럼, 

지금 다시 20년 뒤 어느 날, 

믿기지 않고 올 것 같지 않는 그 날이, 

오늘 처럼 살다 보면 어느 날 또 오겠지. 



우연히 입에서 튀어나온 노래의 한 구절. 

오늘 난 감사드렸어. 

몇 해지나 얼핏 너를 봤을 때, 누군가 널 그토록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음을..

20년이 훨씬 더 지난 노래인데, 

가끔씩 이렇게 내 입에서 문득 문득 튀어나온다. 

무의식이 입을 통해 노래로 나올 때, 두뇌에선 그 시간 나의 감정이 뭍어난 기억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코 뭍은 감성쟁이처럼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리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한동안 멍하니 있게 된다. 나도 모르게. 

참 신기하다. 기억은 흐려져도 그 때의 감정은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그래서 가끔 무의식이 흘린 한 조각의 감정은 알 수 없는 울적함을 남긴다. 

노래 한 구절에 오늘 또 이렇게 수많은 잡생각을 했다. 

지인이 했던 말처럼, 

뇌를 꺼내 냉장고에 잠깐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뇌의 연산작용은 오늘도 쉼없이 열일 중이다. 쓸데없이. 




윤종신, 오래전 그날, 


이게 벌써 1993년 노래구나.

24년 전이라니...믿어지지 않네. 

고등학교 학창 시절..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는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너무 슬프다. 

꼭 가사나 그런 멜로디 때문만이 아니라...

가슴 한 가운데를 무겁게 누르는 그런 묵직한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나도 참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새삼 느끼게 되는 노래. 

오랜 만에 들었는데도 여전히 좋네. 


윤종신 - 오래전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