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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루고(Lugo)에서의 추억

* 2015 9월에 썼던 글 본인 발췌.

 




우리의 인연을 확고하게 해주었던 추억의 도시가 있다.

Lugo라는 스페인 북부의 도시 하나이고,

나와 토마스가 북쪽길의 순례 여정에서 처음 만나

산탄데르(Santander)에서 부터 함께 걷기 시작했지만

정작 함께 걸으면서 가장 추억이 많은 도시이다.

 

내가 카미노의 철 십자가가 있는 돌무덤(?)에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중에 하나는 위에서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다른 하나는 결혼하고 해마다 모든 종류의 카미노 길을 걷는 것이었다.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고

두 번째 소원도 현재 시점에서는 이룬 것과 다름없다.

 

결국 두번째 카미노인 북쪽길에서 토마스를 만났고

2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프랑스의 르퓌길(Le puy en velay) 걸었으며

결혼을 하고는 해마다 여름 휴가 때마다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es)과

은의 길(Via de la plata)까지 걷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대부분

완주 없었지만 모든 길을 느끼고 경험해 봤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고 넘치게 감사한 부분이다.

 

아마도 내년 여름 휴가부터는 걷지 못할 같아서

지난여름의 카미노가 당분간 마지막이 될것 같아서 의미 있었다.

그리고 길은 은의 길이었다.

 

은의 길은 스페인 남쪽에서부터 출발해서 북서쪽,  서쪽 끝에 있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스페인 동북쪽 끝에서 출발해 서쪽 끝에 위치한 산티아고로 이동하는

북쪽길의 루트 , 루고라는 도시와는 전혀 만날 일이 없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은의 길을 걷다가

우리가 북쪽길에 있는 루고를 다시 방문하게 것은

우연하기도 했지만 의미 있고 다른 추억이 되기도 했다.

 


 

4년전 이맘때 헤어질 날이 얼마지 남지 않았던 나와 토마스.

우연찮게 전날 판초를 잃어버렸고 출발하는 당일까지도 몰랐다.

기다렸던 듯, 마침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배낭을 구석구석 뒤집어 엎고 찾아보았지만 판초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전날 알베르게에 짐을 풀다 판초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조심성 없고 덤벙거리기 일쑤인 내가

여정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잃어버린 것이 없어 스스로 대견스러웠는데

그렇게 끝나는 내심 아쉬웠나 보다.

 

성난듯이 퍼붓는 폭우로 판초 없이 도저히 한 발짝도 움질일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루고(Lugo, Spain)라는 스페인 북서쪽 어느 마을에 하루 머물러야 했다.

산티아고에서 며칠 남지 않았고 산티아고 이전에 그나마 도시 였기에

판초도 이곳에서 아니면 구입할 기회가 없을 것이 뻔했다.

게다가 스페인에서 갈리시아 지방은 하루가 멀다고 비가 내리는 지역이기에

판초는 필요했다.

 

그리고 2009  그날 생전 처음 이곳에서 케밥을 보았다.

그리고 맛은 나를 신세계로 인도했고

그렇게 루고에서 지내는 이틀 내내 케밥만 먹었다.

저렴하고 배부르며 맛있다고 행복했었다.

 

우리는 한달 남짓한 시간을 함께 걸었다.

산세바스티안(Sansebastian)이라는 도시에서 처음 만났고,

산탄데르(Santander)라는 도시부터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씻고 화장실 가거나, 잠을 빼고는

함께 걸으며 붙어 있었다.

친구로, 같은 순례자로, 동료로 우리는 다투기도 했고

때때로 죽이 맞아 함께 푼수 같은 장난도 쳤다.

함께 웃고 떠들고 비를 맞고 추위에 떨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아침과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기도 했다.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우리는 서로 깊은 내면부터

생리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의 바닥까지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비해 깊은 친분이 형성되었지만

아무도 우리의 다음을 예측할 없었다.

그리고 어떤 약속도 없었다.

약속이 무의미해지기 쉬웠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린 연인이 되었으며 부부가 되었고

지난 4 내내 언제나 루고 이야기를 하면 케밥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다시 거기까지 가서 케밥을 먹는 것은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엊그제 눈에 상처 때문에 안대를 채로 걸을 수 없어

꼼짝없이 3일은 Ourense 갇혀있게 되었는데

예쁜 도시였음에도 이상하게 우리 둘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은의길도 거의 끝나는 무렵이라 이미 북쪽으로 많이 올라온 상태여서

그나마 다른 주변 도시로 이주하는게 어렵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세고비아로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으러 가자며

기차를 알아봤으나 오늘내일 모레 전부 입석까지 만석.

그렇게 우린 그 날 어쩌다 보니 루고에 다시 가게 것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내내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 심각하게 삐걱거렸지만,

막상 와서 꿈에 그리던 케밥도 먹고

4년전엔 악천우로 없었던 도시 구경과 성곽 산책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니 곳곳에 담긴 아련하고

간절했던 우리의 추억들과

다가올 헤어짐의 슬픔과 다시 없을 같아서

절망스러웠던 미래를 대한 지난 감정들이

새삼 올라온다.

 

빈대에 물리고 양쪽 발은 물집 천지에

한쪽 눈은 보이지 않는 만신창이었지만

어쩌다 추억의 도시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우리.


살다 보면 인생에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면을 만들고

상황을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마음이 된다.

그래서 행복하다. 즐겁다. 그런 마음들도 결국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오늘 힘들었지만

오늘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래도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는 것은

미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성공한 커리어도 없고

엄청난 부를 취득해서 걱정 없이 살고 있지도 않지만

함께 없을거라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이 좋다.

아침에 또는 잠들기 전에 남편을 보면 아직도 가끔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일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없는 시간이니

기대하고 있다.

내가 소망하는 일이 당장 내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