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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것저것/보고 느끼고, 영화 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책, 영화 스포 있음)

( * 영화, 책, 섞임 리뷰 주의. 너무 오래전에 읽었고 본 영화지만 좋은 느낌과 기억에 예전 글을 찾아봤다.

그리고 일단 올리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써봐야겠음)

/ 영화 제목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 책 제목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다나베 시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많은 소설이 영화화되어 인기가 있기도 하고 원작을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이고

원작을 아직 읽지 못했다면,

먼저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영화가 나왔는데 원작이 있다면

내 경우에는 주저 없이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는다.

원작을 먼저 읽으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자체로 느끼고

인물들의 감정을 따르지 않고 습관적으로 작가적 시점으로

영화를 분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작을 이미 읽은 후면 계속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게 되는데

트집을 잡으려고 작정하고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느끼면서

원작은 또 원작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나름 나만의 방법이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라는 제목은

왜 저렇게 지었을까?‘하는 궁금증은 유발하기도 하지만,

읽고 싶은 욕구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은 반감시키는 느낌이다.

게다가 영화는 책에 비해 도입부에서 다소 지루함이 느껴진다.

(책은 도입부가 지루하지 않다)

보통 영화로 각색되면서 캐릭터나 사건 또는 설정이 많이 바뀌게 되고

원작의 느낌에서 많이 동떨어진 느낌을 종종 받게 되는데,

이 영화는 좀 달랐다.

 

캐릭터가 바뀌고 설정이나 사건이 조금은 흥미롭게 각색을 했으면서도

원작에서의 중요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더불어 책보다는 더욱 현실적인 결론으로 씁쓸한 여운을 주었다.

동시에 다시 ‘사랑’을 하고 싶은 또는 받고 싶은

인간의 숨겨진 본능을 건드리기도 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각의 다른 9편의 단편 이야기

-여자들의 다양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 로 엮인 책이다.

여기서 작가는 다른 특성 있는 캐릭터와 일상적인 설정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또는 망상)과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덧붙여 ‘사랑’이 힘들게 무참히 깨어지고 말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경험할 만한 것이라는 것도.

 

9개의 단편이 있지만,

그중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단연 인상적이다.


어려서 뇌성마비로 시설에 버려진 여자아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랑을 다소 삐뚤어지게 바라보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진 핸디캡과 어려서부터 겪었을 그녀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직접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것들이 조제는 그녀가 원해서 선택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현실이었기에

그녀의 시선이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을 측은하게 여기는 할머니가 그녀 뒤에서 버팀목이 되고

안아 주었기에 조제는 그렇게 투정부리듯 머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제는 그녀가 좋아하는 사강이라는 작가의 책에

주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으로 자신도 불리길 원해서

늘 본명 대신 "조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름이 뭐냐고 묻는 츠네오에게 자신의 본명 대신 

조제라는 이름을 알려 주게 된다. 

어쩌면 조제는 스스로 본인이 처한 현실을 그런 식으로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조제로 불리고 그 이름을 듣게 되면, 그 순간 만큼은

자신이 사강의 책에 나오는 그 '조제'라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츠네오를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의 상처를 자신이 어루만져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밖에 할 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츠네오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현실에 부딪히며

결국은 포기(?)하게 되는데

그는 그것을 두고 자신이 관계에서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녀의 마음 어딘가를 분명 어루만질 수 있었고

그녀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남자인 츠네오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힘든 조제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내포하지만,

사실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둘은 결국 이별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츠네오가 나쁘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츠네오가 나쁘게 보이는 이유는 더 있다. 

자신에게 오만해서 그녀에게 자신뿐이라고 했고

그래서 감히 자신이 그녀 옆을 오래(어쩌면 평생)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연민과 사랑을 혼동했으며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이별을 담백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둘의 관계에서 이별이 담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츠네오가 아니라 조제다. 

게다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그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바로 전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그가 나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담백한 이별이 어디 있는가.


이별은 다 슬프고 아프다.

그는 비록 조제와 담백한 이별을 했다고 말하며 홀가분한 척했지만

시작과 과정에 잘못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는 분명 조제를 사랑했었다.

그래서 영화에선 조제를 뒤로하고 얼마 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결국 울고만 것이다.

그리고 이별한 후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오만했고

함께 하는 동안 혹은 그 관계의 시작에서 자신이 연민과 사랑을

혼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녀를 진짜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헤어진 여자친구들은 친구로 남을 수 있어도

조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는 나쁜 남자였기보다는 덜 성숙한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연인의 곁을 계속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구태여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으며

구질구질하지도 않게 표현한다.

곁에 있는 한 행복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주인공 조제의 마음에 어떤 의심을 품지 않게 그녀의 심리를 잘 다루었다.

 

조제는 호랑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호랑이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호랑이의 앞에 서게 되어도 무서워하면서도 안길 수 있으니

그런 사람이 생기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 츠네오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호랑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닫혀있던 사랑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츠네오를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츠네오에게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가자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여기저기 헤엄치는 물고기는

자신과 다르게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깊은 해저에 살고 있으므로

물고기가 되고 싶어 했으며 또 자신이 이미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르게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여겼던 물고기가

사실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깊은 해저에 살고 있는 물고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서 깊은 해저 같은 집에서만 사는 조제. 

어둡고 깊은 해저에서 벗어나므로 알게 된다.

어둡고 깊은 해저는 물고기가 살기에 안락할지는 모르지만,

행복도 슬픔도 없는 무미건조할 수도 있고 그저 어둡기만 하다.

그런 해저를 벗어나면 자신이 있던 곳보다는 더 위험하고

안락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서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안락함을 담보로 해도 괜찮을 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조제는 그렇게 물고기에게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분명 츠네오가 있었다.

츠네오의 동기가 어쨌든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츠네오도 성장한다. 조제와의 이별을 통해서.


그래서 츠네오와 조제가 훗날 이별하게 되어도(영화에서는 이별했다)

그 이별이 여느 이별보다

더욱 조제를 가련하고 안쓰럽게 보이기 쉬웠을 부분을

그렇지 않게 잘 표현했다.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사랑을 했고, 그리고 행복했다.

슬픈 적도 화난 적도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핸디캡에서 오는 감정들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조제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혼자서 그런대로 씩씩하게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혼자 집에만 머물면서 책을 읽던 그 시절과 다르게.

 

 (+)) 추가

책에서 조제와 츠네오는 이별하지 않았다. 

책에서 둘은 정식으로 식을 올리진 않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식 피로연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둘은 결혼한 부부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표현했다. 

책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결말에서 둘이 헤어지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조제가 츠네오를 통해 나중에 헤어진다 해도 지금이 너무 좋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제가 츠네오 또는 그와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배웠다는 의미다. 

그래서 여러 번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또는 헤어진다 해도 괜찮다고 진짜로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는 엔딩에 조제가 이런 마음을 나래이션을 통해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은 비록 헤어짐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미래의 어느 날, 

'어쩌면' 그들이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 

이별하게 된다면, 그것이 조제가 갖고 있는 장애 때문이 아닌,

여느 연인들과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서 츠네오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사실, 영화에서도 꼭 그렇게 표현하려고 의도했던 것 아니었을 수도 있겠으나, 

책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호기심에 조제를 만나고 헤어졌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그가 나쁜 남자로 비쳤을 수도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그 둘의 관계를 조금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담고 싶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그 나름대로 나는 또 좋았었다. 

영화나 책에서 그들의 이별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에서는 위에 설명한 나래이션을 통해, 

영화에서는 츠네오가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던 모습으로 

그것을 표현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의 츠네오 캐릭터가 아쉽기는 하다. 

적어도 이별 후, 전 여자친구가 츠네오를 기다리고 함께 걷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덜 그랬을까. 

아마도 원작에서 이별을 암시하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감독도 에필로그의 느낌으로 

책의 엔딩에서 조금 더 나아가 이별을 보여주는 결말을 담은 것 같다. 



어쨌든 조제는

세상에 자신이 가장 힘든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어쩌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도 당신의 아픔을 극복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당신도 과거의 사랑을 통해 조제, 그녀처럼 성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