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Monologe2016. 4. 17. 01:15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기억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좋던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싫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나를 매일 괴롭혔던 초등학교 때 내 짝꿍.
하굣길에 자주 마주쳐서 설레던 동네 오빠. 
맨날 뒤에서 쿡쿡 찌르며 쪽지 전달하던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늘 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어서 쌍둥이라고 놀림받았던 대학 동기. 
언제나 해맑은 웃음 뒤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갖고 있던 옹알이 모임 사람들. 
정 많은 기초반 친구들.
욕심 많던 연수반 동기들. 
착한데 겸손하기까지 한 전문반 언니들. 
마녀사냥을 좋아했던 유난히 유치했던 대학 때 그 무리들. 
이제 얼굴도 기억 안나는 초등학교 때 내가 처음 한 ‘풋사랑’의 그.
여행에서 만난 ‘아직’ 천진했던 꼬마들. 
나를 참 많이 좋아해줬던 고마운 사람들. 
내가 참 많이 좋아했던 사람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기억. 저런 기억. 

한때는 기억이 스치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기억이 지워지는지 몰랐지만, 부단히 노력했었다.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 시간들이 잊혔다. 

​그런데, 그 시간 속에서 간직하고 싶었던 소중한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더라.


그래서 이제는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도 전부 기억하고 싶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못할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하나보다. 
 



이쁘게 생긴 그녀는 말도 이쁘게 잘했다. 
아마 녀석이 남자로 태어났어도 무조건 이뻤을 것이다. 
착한 사람은 그래서 다 예쁜가 보다. 
어린아이처럼.
 
“나는 말투도 쌀쌀 맞고 다정하지도 않은데 나랑 왜 친하게 지내?”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서 친구든 애인이든 이런 질문을 곧잘 했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마냥 행복해하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는 며칠밤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맞아. 언니 말투는 안 친절해. 그런데도 언니한테는 ‘정’이 느껴져.

언니는 한번 연을 맺으면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끈끈한 ‘정’ 같은 게 느껴져 ”
 
그때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아마도 “녀석 눈치 있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농담 던지듯 내 진심을 말했다. 
 
“ 너 사람 잘 알아본다. ”
“ 거봐 ”
“ 근데 난 돌아설 때는 매정해. 의외로.”
“ 알아. 그래도 다시 그리워하잖아. ”

 
무서운 녀석이라고 그리고 사람 보는 눈썰미가 있어서 너도 맘고생 많았겠구나, 했다. 
녀석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그 시간의 나처럼.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울지 않았다. 
맘을 들켜버려서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울어버리면 미안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따뜻한 대화를 하지 못할 거 같아서 울음을 삼켰던 것 같다.
아마 녀석도 그래서 울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녀석이 누구였는지 잊었던 것처럼 녀석도 우리의 대화도 기억 못할 테니까.



만약에 녀석이 우리 대화를 기억하고 자기랑 대화한 걸 잊었다고 서운해하면 어쩌지?

그렇게 되면 조금 난감한데.....

그냥 모른 척하고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런 녀석이라면 아마 아직도 내 옆에 붙어 있으리라. 
이런 녀석이라면 내가 두고두고 보고 만나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예쁜 사람과 내가 멀어질 리 없다. 
멀어졌어도 언젠가 분명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니면 녀석이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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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 힐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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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공감가는 글이네요.. 딱히 다정한성격이 아니라..

    2016.04.17 17: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인간 관계는 다다익선이라는데..
      저는 군중속에서 고독을 자주 느껴보고
      아무리 아는 사람이 많아도 정작 중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경험도 하다보니..얇고 넓은 관계가 무의미해졌어요.
      짧고 굵게 관계를 맺는 게 제 성향에 더 맞는 거 같아요.
      만인에게 웃어주고 나한테도 웃어주는 사람도 나쁘진 않지만,
      전 그보다 만인에게 웃어주진 않아도 내게는 늘 웃어주는 것이 더 좋네요.
      웃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2016.04.19 02:16 신고 [ ADDR : EDIT/ DEL ]
  2. 젊었던 시절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 지금은 연락이 없습니다 )
    그땐 그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밤새 나눴던 기억이 있고
    그때 마음으론 영원할꺼란 생각도 들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동성애같은 마음이지 않았나 싶네요

    2016.05.06 02: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릴때 다들 그런 추억이 하나쯤 있는것 같아요..
      나와 살아서 그런지 안그래도 아득한 과거의 시간들이 더욱 꿈만 같네요.
      지금에 더욱 충실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6.05.06 21:29 신고 [ ADDR : EDIT/ DEL ]
  3. 힐데님 글을 읽으니 제게 서운해하던 친구가 떠오르네요. 제가 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인 사람인지라, 생일을 먼저 챙겨주거나 새해나 추석때 문자로 안부인사를 하거니 하지 않더라고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애초에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없달까.. 그렇지만 인연이 닿을 떄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그래도 오랫만에 연락이 닿아서 반가운 저와 달리 오랫만에 겨우 연락이 닿았다고 서운해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구요. 있을 떄 잘한다가 모토 입니다 ㅎㅎㅎ 그러다보니 제 주변에는 오랫동안 연락을 안하다가 해도 어제 만난 듯 잘 지낼 법한 성격의 친구들이 주로 남네요 ㅎㅎ

    2016.05.15 19: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이들면서 성격이 이랬다 저랬다 한번씩 바뀌고 그러는 거 같아요.
      예전엔 관계, 연락, 이런거 엄청 집착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이렇게 나와 살아서 그런지...좀 놓아지더라구요.
      이제는 바캣님 말씀 하신거 처럼 오랜만에 만나도 편하고 즐거운 사람들만 남았어요.
      한국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를 보고 싶은 사람, 내가 보고 싶은 사람.
      이 두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사람들만 만나려고 해도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한쪽의 경우에 해당하는 인연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2016.05.18 00:1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