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1 > 김치와 소세지
부제 2 > 김치 파워
요 며칠 이상하게 온종일 속이 울렁울렁 영 비위가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ㅠㅠ)
멀미를 하는 것처럼 살짝 어지러우면서
속이 메슥메슥한 것이 입맛도 없다.
배는 고프니 뭘 먹긴 해야겠는데,
클라스 중간 점심시간에 근처에서 독일식 핫도그 빵이나,
커리부어스트, 케밥으로 때우는 것도 한두ㅜ번이지.
요즘처럼 속이 불편할 땐 샌드위치를 직접 만드는 편이 낫다.
그래서 만들었는데,
점심때는 손바닥만 한 샌드위치 반도 못 먹고 계속 헛구역질. ㅠㅠ
결국은 억지로 반이상 욱여넣고 나머진 버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러길 벌써 몇 날.
급기야 어젯밤에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을 향해
전투적으로 향했다.
부엌에서는 이미 공부하다 배고파진 토마스씨가 스페인식 소세지를 굽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향기로울 그 냄새를 맡는데,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는 거다.
서양 사람들의 겨드랑이 향기만큼 참을 수 없었다. -_-;;;;
코를 틀어막고 재빨리 냉장고에서
익어가는 김치 깍두기를 한 그릇 퍼담고
김치만 먹으면 짜니까 찬밥도 한 숟갈 담아서 거실로 갔다.
내가 김치를 꺼 낼때 토마스 씨 왈,
" 아! 김치 냄새!! " (한국말로 ㅋㅋ)
나는 뭐? 뭐? 어쩌라구, 아주 살짝 불만 섞인 소리를 무시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말 그대로 폭풍 흡입을 했다.
거의 다 먹어갈 즈음,
토마스가 구운 소세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오는데,
내가 정말 너무너무 역겨운 거다.
그래서 막 토하는 시늉을 하면서 ㅋㅋㅋㅋㅋㅋ
막 깍두기를 더욱더 퍼먹으면서 다른 방으로 피신했다.
그랬더니, 그의 표정이 정말로 슬픈 표정이었다. ㅋㅋ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소세지 앞에서 내가 토할 것 같은 모습이 슬프단다.
실제로 한국말로,
" 왜구래? 싫어? 슬푸다. 유유유" 했다는 ㅎㅎ
그래서 결국은 (지금은) 역한 소세지를 먹는 토마스 옆에서
나는 (토마스에게는 역한 신 김치 냄새가 가는) 남은 깍두기를 다정하게 함께 앉아서 먹었다.
토마스는 새 김치, 익지도 않는 새 깍두기는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하는데,
조금이라도 익기 시작하면 정말 쳐다도 안 본다.
익은 건 김치찌개나 볶음으로 해줘도 절대 네버 안 먹고
유일하게 부대찌개에 조금 들어간 것만 잘 먹는다.
그래서 익은 김치 냄새는 그에게도 평소에 향기로운 향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밥은 꼭 같이, (다른 식단이더라도)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기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냄새의 조합으로 함께 야식을 했다.
토마스는
" 어우, 김치 냄새, 김치 냄새!! " 하면서 구운 소세지에 빵을 먹고,
나는
" 어우, 소세지 냄새, 냄새!! 토 나와!" 하면서 옆에서 김치를 먹고,
둘 다, 그 상황이 좀 웃기면서도 좀 서운했다.
(그땐 상황이 웃겨서 썼는데, 쓰고 보니 안 웃기네. ㅠㅠ)
* 덧 *
토마스는 밥만큼은 다른 식단이더라도 옆에서 같이 먹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한국 음식도 대체로 잘 먹는 편이다.
위에서 언급한 신김치 빼고. ㅋ
한 며칠 밥을 안 하면 밥 먹을 때라고 꼭 한국말로
밥. 밥. 밥. 밥 주세요.
밥 시간 있어요.
라면서 음까지 넣어 진짜로 노래를 부른다.
정말 맛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내 나라의 음식도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고마워서 신혼 초엔 정말 한국 음식을 열심히 했다.
라면도 잘 못 끓이던 내가,
김치도 담그고 만두피와 속까지 직접 만들어서 빚질 않나.
그런데 어학을 하고 일을 하면서는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니
요리하는 거 자체가 귀찮아서 많이 줄어들긴 했다.
하여튼, 초반엔 김치 냄새를 싫어하던 토마스가
가끔 내가 요즘처럼 메슥거리는 날엔 김치를 꺼내 먹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 냄새, 냄새, 냄새, 냄새가 진국이, 너무 많이 있어 "
라고 '굳이' 한국어로 컴플레인을 한다.
그때마다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던 맘이 있었는데,
어제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했다고.
어떻게 소세지 냄새가 싫어질 수 있느냐며.
처음으로 내 마음을 이해했다고.
근데, 나는 왜 뿌듯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