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공소 여정을 시작했지만 공소의 현실과 상황들 속에서 어느새
숙연해진다. 그동안 도시에서 너무도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신심을 키워 오고 있는
또 다른 공소들이 있다는데… 성모님께서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신 것처럼 꺼져 가는 희망의 불씨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 출처 : iKolbe.com,  417호 2011. 10


 
쌍치, 꺼지지 않는 기적의 불씨


  다음 날, 우리가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주교구 순창 쌍치 공소였다. 쌍치 공소는 공소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참 잘 되어 있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파란 하늘 아래 예쁜 쌍치 공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에 한껏 소리를 울려 우리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건물 하나만 달랑 보였던 어제의 작은 공소들과는 매우 달랐다. 잘 갖춰진 교육관도 있고 피정과 수련회를 위한 비교적 큰 규모의 조립식 건물도 있었다. 공소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에 성모님을 모시고 그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여름의 뙤약볕을 막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곳을 가꾸고 지켜 오신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한두 시간으로는 부족할 만큼의 긴 사연들은 선교사님 개인뿐만 아니라 이 공소의 역사이기도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그 고생이 가슴까지 전해지는데 실제로 겪었다니 얼마나 힘겨웠을까? 앞으로 주일 미사 때 본당에서 거의 매주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 이제는 절로 선교사님을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같다. 그런 선교사님의 노력이 있어서였을까, 난 공소들의 열악한 환경에 비한다면 이곳은 모범 공소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정리정돈은 물론이며 최근엔 선교사님을 중심으로 새벽 기도를 이어 오고 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느님과 함께, 성모님과 함께 이곳 신자들이 살아 있고 공소가 살아 있고 가톨릭이 살아 있고, 그래서 이곳에 있는 나도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쌍치 공소처럼 지나온 다른 크고 작은 공소들도 못지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런 공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촛불처럼 가는 숨을 쉬는 약한 신앙심의 불길을 막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또다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잘되어 있는 쌍치 공소에서 공부하듯 배우고 기적을 전해 들으며 그곳을 떠났다.

 

 

 
고즈넉한 쌍치 공소 전경

 

 

 

땅 끝까지 닿은 하느님의 손길


  또다시 얼마를 더 달려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해남의 땅끝 공소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정에 없던 노화도를 선교사님의 추천에 의해 추가로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화도가 마지막 종착점이 되었다. 빠듯한 일정에 방문 공소가 늘어 마음은 더 바쁘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지방색 때문인지, 공소의 훈훈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만은 언제나 편했다.


  이곳에 계신 다른 선교사들(해남 땅끝 공소의 이성은 F.하비에르 선교사와 성전 공소의 손광일 미카엘 선교사)과 또다시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좋았던 시절부터 힘들었던 시절과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3박 4일 동안 들어도 모자라는 이야기였다. 수사님과 선교사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또다시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소의 최초 사목이 선교였다면, 어떻게 보면 공소가 초대 교회와 가장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공소는 교회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런 뿌리가 사라진 교회가 얼마나 제대로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설혹 유지된다 해도 그 이념은 변질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소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공소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선교사를 떠올리게 된다. 선교사들 사이에서 늘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교회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의 땅끝 성당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힘들었지만 그런 고통들이 지금의 공소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야말로 그 아픔들은 찬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은 공소를 보든, 크고 잘 운영되는 공소를 보든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질문들이 떠오른다.

  공소의 목표는 신자가 100명 이상이 되어 본당으로 승격되는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본당으로 승격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오신다고 해서 꼭 활성화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이제는 공소의 의미가 기존과 달라졌다. 사는 곳이 변하고 먹는 것이 변하듯 신자들도 변해야 한다는 말씀처럼, 공소도 그에 맞춰 변화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이러다가 이 작은 교회가 멸종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맞는 것인가? 또다시 문제만 가득 안고 예정에 없던 섬, 노화도로 떠난다.

 

 

공소 앞 뜰에 자리한 성모자상

 

 

 

 
아담한 노화도 공소 전경(좌)과 노화도 공소 내부(우)

 

 

 

 

예쁜 마을, 참 예쁜 신앙


  노화도 공소에 도착해서 다정다감한 선교사와 젊고 예쁜 공소회장님을 만나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체 신자 수가 1,000명 정도인 데 비해 미사 참례자는 30명 정도이며, 그것도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해서 오롯이 현지인들로 정착된 인원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이전 공소들에서 없었던 예비신자 교리도 있었다. 인원은 한둘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자세하고 확실하게 교리를 배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모든 신자들이 함께하는 묵주 기도가 있다. 이미 30,000단을 바치고 또다시 이어 가는 중이라고 한다. 묵주 기도와 함께 성모님께서 지금의 노화도 공소를 지켜 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꾸 여기가 섬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꾸준한 이 섬의 신앙이 분명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예뻤으리라.


  땅끝 공소에 이어 여기서도 당사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총 열 명 정도 되는 할머님들끼리 공소에 모여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계셨다. 열 분뿐이지만 모였다 하면 출석률 100%를 자랑하는 당사도 할머님들, 개신교의 교회가 그 앞에 들어서고 이곳으로 오라는 목회자의 말에 “가려면 내가 다니던 곳을 가지 거긴 안 간다.”하시는 신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요즘은 공소회장 할머님이 폐암으로 누워 버리시면서 모이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이야말로 꼭 지켜져야 하는 공소가 아닐까?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공소와 관련된 것들, 공소의 소모임을 통한 신자간의 소통과 나눔, 그로 인한 신앙의 공유와 서로를 이끌어 줄 수 있었던 것, 그 안에서의 미사, 그러한 것들이 사라짐으로써 점차 그곳을 향하던 발걸음들이 끊어지고 마침내 공소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 소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사랑과 관심의 부재에서 오는 아픔인 것 같다.
  ‘공소’. 다니면서 느낀 것은 신자가 기도하고 머물 수 있는 또 다른 하느님의 품이라고 생각한다. 공소에는 분명 도시의 성당과는 다른, 사랑방 같은 푸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있다. 그곳에서만 느낄수 있는 고유한 그 무엇. 그런 것들이 사라진 공소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아니, 의미를 떠나 알맹이가 빠진 허울로 얼마나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 공소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건지도 모른다. 아주 없거나, 있어도 온기를 잃은 곳들.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이제는 갈 곳이 없다. 사람이, 사랑이, 품이, 무언가 그리울 때마다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품으로 공소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성당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성당이 여의치 않은 많은 곳에 공소를 발전시키고 보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 노화도 공소 회장 강성진(프란치스카)(좌)과
선교사 박기남(마리아)(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언젠가 어떤 학자가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가 상상해 왔던 인자하고 잘생긴 외모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이 예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더욱 비웃고 무시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었다.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면서 문득 다시 떠올려졌다. 그리고 그 가설이 진리이거나 참이라면 천사 또한 우리가 그렇게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천사의 마을에 머물렀던 것이다. 천사를 우리가 그려 왔던 이미지로만 생각한다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랑은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사라고 뭐 별거 있을까. 하느님의 메신저 아닌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왔을 수도 있다. 몹시 나쁜 사람들을 보고 악마 같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순수하고 인정 많은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렇게 천사 같은 분들에게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 품에 머물 수 있는 기회나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에게서 그런 것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마을 사람들도, 교회도, 어떤 단체도 말이다. 이것이 공소의 역할일 수도 있고 공소를 지켜 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묻혀 있는 유적지도 발견해서 보존하고 사라져 가는 동식물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는데, 사라져 가는 공소를 두고 보기만 하다니….


  누군가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공소를 지켜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는 아무리 도시로 떠나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 있으니까. 그래서 고향과 같은 공소를 둠으로써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버지의 품을 남겨 주고 싶다고 말할 것같다.

 

 

 

 


Posted by H 힐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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