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in DE/우리 하루, feat. 독일

로맨틱한 독일 남자

다니엘 린데만에게 노잼이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처럼, 유럽에서도 독일인은 재미도 없고 진지하기로 유명하다. 

이성적이고 로맨틱하지 않기로 유명하여 독일 남자는 유럽에서도 인기 없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인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쩌다 로맨틱의 '로'자만 나와도 

그들은 스스로 알아서 선수 쳐 말하곤 한다. 


"그래. 우리도 알아. 독일인들은 재미없지. 그래서 인기도 없고."


실제로 겪어보니 처음엔 들었던 풍월대로 였다. 

매사 진지하고 농담도 정색하며 해서 진짜 진지함과 농담이 구별도 어려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대장들이고 무드 브레이커들이다. 

나는 그래도 처음부터 독일인들의 그런 점이 좋았다. 

서양인 답지 않은 진지함으로 다가와서 좋았다고 할까. 


그런데, 조금 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겪어보니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보고 겪은 독일 남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불특정 한 표본이기에 이것으로 전체를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독일 남자의 정의처럼 떠도는 풍문이 어쩌면 한쪽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내 친구들의 남편만 봐도 소문과 다른 부분이 많다. 

독일 남자들이 일단 '진지하게' 사랑에 빠지면 보통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생각을 하게 되니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우리 남편의 애교와 푼수로만 보면 유쾌한 스페인 남자나, 정열적인 이탈리아 남자들에 뒤지지 않는다. 

물론, 상대적으로 부족은 하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서두가 길어졌는데, 

친한 동생 남편의 로맨틱함이 떠올라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편의상 친구로 칭하고, 그 친구 남편은 자주 해외로 출장을 가는데, 

이번에는 조금 길게 가게 되었다. 두 달. 


남편이 출장을 가고 처음 맞는 아침. 

친구는 책상 위에서 쪽지 무더기를 발견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친구를 위해 매일 아침에 한 장씩 볼 수 있는 쪽지를 남긴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예쁘고 기특(?)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완벽하게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그런 그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깨알같이 한글을 쪽지에 간간이 남긴 것이다. 

상상해 보면, 너무 로맨틱하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덩치 커다란 남자가 자기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수십 장에 한 번도 같은 말이 겹치지 않도록

고민하면서 쓰고, 그 와중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한글을 번역해서 

한글을 그리고 있었을 그 모습. 쓰는 게 아니다. 그린다. ㅎ


깨알같은 한국어 쪽지 몇 장을 보면 은근 로맨틱하다. 

Ich drücke dich, 라는 의미로 쓴건데, 내가 안아줄 게, 정도의 뉘앙스로 쓴 것. 이런 실수 좋다 ㅎ - 독일어로 schatzi, 직역하면 보물이지만 영어로 하이 스위티. 같은 의미인데, 번역기가 잘못 했네 ㅋㅋ

키스는 뽀뽀~ 이런 말을 쓰고 싶었는데 구글이 키스로 알려줌 ㅋ만국의 공통어. 알러뷰. 얘는 번역기가 어색하지 않게 잘했다 ㅎ

Meine Hübsche로 의역하면 내 사랑, 우리 이쁜이~ 정도 인데, 구글이가 또 잘못했네 ㅎ


게다가 지난번 여행을 이 친구랑 다녀왔는데, 

우리가 여행을 가기로 계획하고 출발하기 하루 전날인가, 당일 날 쪽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침실에 걸린 액자 뒤를 봐


액자 뒤를 보니 남편이 액자 뒤에 예쁘게 50유로를 꽂아 두었다. 

친구 남편이 생각했을 때, 출장을 떠나고 한 달이 되어갈 때쯤이면,

당신의 아내가 지루해서 소풍을 가거나,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 질 수도 있으니 비상금을 보물처럼 숨겨두고 간 것이다. 

또 그것이 정말 딱 그 시기에 쪽지로 나오고. 적절한 시기의 보물 찾기.

친구 남편은 꽃도 가끔씩 선물하고 이벤트성 로맨틱함도 있다.


원래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토마스 씨는 그 나름대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항상 내 예상을 비껴가는 엉뚱함이 있기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여보, 토마스. 

내 친구 남편이 출장 갔다고 했잖아. 매일 한 장씩 아침 인사 대신 보라고 쪽지를 

두 달치를 써두고 갔대. 너무 로맨틱하지?

여보도 그런 로맨틱함을 배워도 좋을 것 같아. 어때?"


역시, 남편의 대답은, 


"음. 매일 다른 말로 쓴다니, 나처럼 창조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곤욕스러운 일이야. 

그런데,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결코 하지 않겠어."


"왜? 왜? 왜? 왜? 왜 때문에??? "


"여보 친구는 그 쪽지 매일 한 장씩만 읽지?"


 "그야. 당연하지."


"거봐, 우리 여보는 너무 궁금해서 하루에 한 장씩만 결코 읽지 못하고 한 번에 두 달치를 모조리 다 읽어버리고 말 거야. 내가 그래서 그런 거 안하는 거야."


토마스 씨.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ㅎㅎ

왠지 얄밉게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이런 남편의 반응이 난 재밌다. 

나도 독일 남자화 되어가는 것인가. ㅎ


그리고 덧붙이는 말도 재밌다.

나 없이 하루 이틀은 몰라도 일주일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자기가 출장 가면 어떻게 해서든 나를 데리고 동반할 거라는 의외의 의지까지 있었다.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반대로 내가 일 때문에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그때 자기는 어쩌려고? ㅋㅋ


신혼 초에 남편은 누구랑 같은 침대에서 잠자는 걸 힘들어해서 잠자리(?) 문제로도 숱하게 싸웠었다. 

청각이 너무 예민해서 그가 잠들고 나서도 나는 뒤척이지도 못하고 눈만 꿈뻑꿈뻑.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자주 싸웠었는데, 어느새 나 없이 못 잔다니.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론은, 독일 남자도 의외로 꽤 로맨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