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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어쩌면 사랑, 아마도 인연

우연으로 내리는 비 - 13. 란, 기약 없는 이별

13. 란, 기약 없는 이별     


 '안녕'이란 말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참 흔한 말. 순수한 안부 인사지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안부지만, 그 사소한 인사도 가끔은 묻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어 물을 수도 없을 때가 있다. 간혹 연락이 닿을 수 있는 경우가 있어도 손에 꼭 쥔 전화번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게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안부를 묻는다.   그 쉬운 말, 그 흔한 말 조차 삼켜야 하고 혼자서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떤 날이나 언젠가 잿빛 가득한 하늘이 머무는 날에도, 유난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던 어젯밤이나 오늘처럼 따뜻한 볕이 내리는 가슴이 뽀송뽀송해지는 날에는 더 궁금한 그런 사람이 있다.  


   

"정말 잘 지내고 있지?"  

      

  나에게 지난 사랑들이 그랬다. 지난 사랑처럼 멀어진 친구도 있었다. 함께 살 비비고 붙어 있을 때는 참 시리게도 예뻤던 인연이 ‘안녕’이란 한마디로 거리에서 스치는 낯선 사람보다 못하게 되었다. 차라리 시작하지 말 것을..... 비슷한 후회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사랑은 내게 흔하지만 어려운 것이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친구로 남아 여지를 두는 것도 나는 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내 사랑이 식어버리기 전에 언제나 인연이 다했기 때문이었다. 꼭 모두 원수처럼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중엔 좋은 추억이 된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사랑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언제나 나였고 출구 없는 추억에 갇혀 길을 잃는 사람도 나였다.     


  몇 번의 비슷한 반복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단순하게 시작한 반성은 결국 천천히 자존감을 무너뜨렸고 언젠가부터 내게 사랑이란 감정을 키워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좋은 느낌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부정했다. 내가 보아도 예쁘지 않은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잠재되어 있던 나약함은 비가 내릴 때마다 악마가 머물고 간 그 자리에 고여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고인 빗물을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지 몰랐기에 썩은 내가 진동하는 나약함이 내 안을 가득 채웠을 때도 나는 몰랐다. 눈에 보이지 않아 몰랐다. 어쩌면, 내게서 비롯된 악취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나를 더욱 구석으로 몰았다.      


  기억이라는 것은 조금 웃긴 구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 듯, 괜찮은 듯, 지내다가도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우연히 내리는 소낙비 한 번에 고여 있던 진흙이 곧 구정물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기억은 흘러내리는 흙탕물이고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결국 감정이다. 그때의 상황, 사건, 대화처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들까지 모두 희미한데, 신기하게도 그때 느꼈던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첫사랑이 언제나 아련한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기억은 시간을 지나면서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감정에 서서히 잠식되고 나빴던 것보다 좋았던 것을 기억하려 한다. 내 기억을 꺼내면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남아있던 것은 언제나 감정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사건들. 이제는 자유롭고 싶은데 언제 내렸는지 모를 먼지처럼 아무리 털어내도 언제나 새삼스럽게 나부꼈다.      



  루고에서 시작한 비는 3일째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힘들게 구입한 우비도 갈리시아의 폭우와 산길 나뭇가지에 찢기고 헤져 비에 젖은 휴지 조각처럼 쓸모없어졌다. 작은 슈퍼마켓이 보이자마다 가장 커다란 크기의 쓰레기봉투를 구입했다. 물 먹은 스펀지가 되어 걷느니 쓰레기봉투라도 뒤집어쓰는 편이 나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쓰레기봉투는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실용적이었다.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는 뭐가 좋다고 나는 그렇게 웃었을까?





“파비안, 너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어?”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아.”

“그럼, 여기 걷고 있는 건?”

“음......., 생각해보니 카미노를 걷는 게 내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하나네. 그런데, 그게 꼭 필요해?”

“목표가 없으면 방향도 없으니까 시간 가는 대로 살게 되고 그럼, 아깝지 않아?”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그 방향대로 살면 되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꼭 하고 싶은 것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좀 늦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그런 질문이 나는 귀찮아.”

“이 길을 걷는 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넌 또 내게 바보 같은 질문이라 하겠지?”

“아마도?”                    



  사람들이 그에게 꿈을 묻고, 하고 싶은 것을 물을 때마다 그는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살면서 꼭 꿈을 가져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도 있어야 한다고 성가시게 요구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했다.               



“너는? 너는 꿈이 있어?”

“나는 있어. 그런데 좀 허황된 꿈이야. 어차피 현실성이 없으니까 맘대로 꾸는 거지.”

“꿈은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아. 실망감을 배울 뿐이지.”

“난 다르게 생각해. 실현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사람들은 꿈을 꾸는 거야. 그것이 현실이 되면 얻게 될 보람이 실현되지 않아 실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큰 기쁨이니까. 넌 가끔 의외로 낙관적이지 않을 때가 있더라.”

“아니야. 난 긍정적이야. 비관적인 것과는 달라. 단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거지.”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 때 사람들은 비웃었어.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나느냐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비웃지 않잖아. 이제는 먼 미래에 진짜 그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음......, 그럴 듯 해. 그래서 란이, 너의 꿈은 뭐야?”  

“먼저 부정적인 의견을 말한다거나, 비웃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약속해.”          



  나에게도 꿈이 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사람들이 비웃었던 것처럼 지금 내게는 가당치도 않은 꿈이기에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워 언제나 마음 깊숙한 곳에만 담아두었던 그런 꿈이 있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어. 습작하고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준이었지만, 언젠가 이루어질 날을 상상하면서 살았어.”

“그런데, 왜 과거형이야?”

“몇 년 공부를 하고 현장에서 일해 보니까, 나는 재능도 없고 악바리 근성도 없다는 걸 알았거든.”

“그렇지만, 뭔가 너와 잘 어울려.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 주제 할 수 없이 넘치는 상상력이 감당되지 않아 끼적이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꿈은 잊혔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해야 했고 좋은 회사에 취업해야 했다. 먹고사는 것이 급한 보통 사람들에게 꿈을 꾸는 것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동화였다. 생계를 담보로 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무모했다. 무엇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불면증과 우울증을 지나며 억지로 버티고 있으니 어쨌든 그 시간들이 지나갔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니 메마른 땅에도 꽃이 피는 것처럼 그렇게 내 꿈이 다시 싹을 틔웠다. 나처럼 아팠던, 그래서 사는 것에 의미가 없었던, 그러나 끔찍하게 살고 싶은, 지독하게 사랑받고 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 졌다. 어쨌든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을 잔소리하듯 타이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을 꺼내 보여 희망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다 되어 늦은 도전을 했지만, 다시 현실에 부딪혔다. 꿈이 간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나에겐 재능이 없었고 미친 듯이 빠져 끝까지 물고 늘어질 배포도 없었다. 어정쩡한 상태로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꿈에 조금 다가섰지만 두려움은 더 커졌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거나 한쪽을 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쪽도 자신이 없었다. 도피처럼 다시 길 위에 서게 되었고 선택과 결정은 무기한 미뤄둔 상태였다.                      



  한 달 이상을 함께 걸으면서 잠들 때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끝이 없었다. 오늘처럼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간혹 숙소가 있는 마을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아르수아(Arzúa)에 묵었어야 했는데 이미 1시간 전에 그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처음 아르수아에 도착했을 때, 예전에 너는 어디 묵었니, 나는 어디 묵었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금 더 가면 다른 숙소가 있었던 기억에 조금 더 걸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숙소가 있는 다음 마을인 이레네(Santa Irene)까지는 너무 멀었다. 다시 길을 돌아가던가, 이레네까지 가는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산티아고로 가야 하고 이미 수 킬로미터를 걸어왔는데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무리해서 이레네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실수였는지 깨닫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비도 멈추고 좀 걸을만해졌는데, 갑자기 오른쪽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그 통증은 이전에 전혀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 중앙에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의 바늘이 꽂히는 것 같았다. 날카롭고 거센 통증이 발바닥에 느껴지는 순간 통증은 혈관을 타고 오른쪽 다리를 관통하여 오른쪽 골반까지 이어졌다. 오른쪽 다리 전체에 걸쳐 연결된 혈관이 통째로 뒤틀리고 당기는 느낌이었다. 오른쪽 다리에 전혀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변엔 나무와 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며칠 사이 내린 비 때문에 대지는 빗물로 꾸덕꾸덕한 상태였다. 앉아서 쉬어갈 바위도 쓰러진 나무도 없었다. 뒤돌아가기 싫어서 부렸던 욕심과  왜곡된 기억에 의지해 부주의했던 내 탓 같았다. 자책하는 나를 그는 언제나처럼 어른스럽게 다독인다. 다행히도 우연히 지나는 다른 순례자와 그의 부축을 양쪽으로 받으며 겨우 이레네에 도착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숙소에 도착해서 나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고 파비안은 스스로 내 심부름을 자처했다. 간단한 저녁을 준비해 테이블 위에 올려주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깨끗하게 씻어 내놓았다. 물통에 물이 비면 재빠르게 다시 채워줬고 내가 무엇이든 필요하면 전용 비서처럼 수발을 들어주었다. 귀찮은 내색, 싫은 표정 한 번 없이 웃으며 무엇이든 해주는 그를 보니 참 신기했다. 그는 낯을 많이 가렸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한 편이며, 다정하거나 눈치가 빠른 편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변한 것일까? 단지, 그의 모습 중 하나일까? 정말 궁금하고 또 모호하여 그가 움직이는 대로 시선을 쫓으며 어느새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빈 컵에 거미를 유인하고 있었다. 나라면 무서워서 피하거나 생각 없이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행여나 거미의 가느다란 다리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조심조심 컵에 담아 창문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 달을 넘게 그와 종일 붙어 있었고, 이제는 그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언제나 새롭다.           


  파비안. 그와의 시작이 처음부터 호감이진 않았다.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나뿐 아니라 그도 그랬다. 그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시나브로 그에게 스며들었다. '왜 그랬니? 왜 그랬어.' 스스로 타일러 보고 원망도 했지만, 언제나 그가 말했던 것처럼 무모하고 멍청한 질문이었다.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생각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말에 따르는 책임을 피하는 것으로 비쳤다. 살면서 누군가와 약속하고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다던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나 스스로가 만든 두려움이 가져온 불안함이었다. 불안함을 불식시키고자 했다면 그와 떨어지고 멀어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러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아는 여느 남자들과 달랐다. 그 다름이 처음엔 너무도 낯설어 불편하였고 거부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다름은 나 자신의 내면과 지난 나의 사랑까지 돌아보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의 모습과 많이 흡사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믿음직스럽지 않았고 설사 믿음직스럽다 하여 그대로 믿어버리기에 우리 사이의 나이 차이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결코 없는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듣기 좋은 인사치레나 칭찬을 하지 않았다. 어렵지 않은 내 질문에도 시원스러운 대답 한 번 듣지 못해 서운했지만, 반대로 덕분에 조금의 의심이 사그라졌다. 적어도 자신이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또 하루의 아쉬운 밤이 지나고 있다.  


  이튿날 오후, 우리는 느지막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산티아고는 2년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인파로 붐볐다. 성당 주변과 주요 광장 주변에 못 보던 기념품 상점도 들어섰고 그 주변 음식점들의 가격도 2년 전보다 다소 비싸졌다. 당시엔 있는 동안 내내 엄청난 비가 내려 제대로 올려보지 못했던 산티아고 성당도 맑은 하늘 사이로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



  그가 아끼는 골목이라며 나를 이끌고 간 한쪽에서는 감미로운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분수대 앞에서 들려오던 그 음악은 루고 광장에서 들었던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유명한 클래식은 아니었지만, 라스트 카니발(Last Canival)처럼 잔잔하고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느껴졌다. 첼로처럼 묵직한 느낌은 덜하지만, 그 애절하고 쓸쓸한 음색은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거리 악사의 음악이 구슬프게 울렸고 울컥울컥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이 시간들, 코 앞으로 다가온 예정된 헤어짐에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와 멀어지겠다고 고민하며 방황하느라 허비한 시간들을 후회해 놓고 다가올 헤어짐에 지레 겁먹고 다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다. 의지와 다르게 점점 그에게 향했던 마음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청승맞게 굴고 있었다. 쌀쌀해진 갈리시아의 바람을 타고 깊게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다가올 이별을 위한 전주곡처럼 광장 안에 갇혀 맴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산티아고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무리해서 피니스테레(Fisterra, 또는 Finisterre)까지 더 걸을 것인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편하게 다녀올 것인지.

  지난번 카미노에서도 피니스테레까지는 걸어본 적이 없어 걸어보고 싶었지만, 오른쪽 발의 통증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 무리하지 않기도 한다. 늘 그렇듯이 결정하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일단 결정하고 나면 그와 나의 움직임은 신속해진다. 처음엔 나와 모든 것이 반대고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는 나와 많이 다르지만 또 많이 닮아있다. 불과 한 달여 걸어온 시간들이 우리를 닮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닮은 것을 무엇이든 애써 찾고 싶었던 것일까? 혼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피니스테레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산티아고에는 스멀스멀 비가 내렸는데, 불과 100km 떨어진 피니스테레에는 먹구름만 가득했다. 동방에서부터 이어진 대륙이 이 곳 피니스테레에서 끝난다 하여 세상에 끝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흔한 등대하나 없이 탁 트인 바다가 일품인데, 거대하고 묵직한 구름 덩이가 피니스테레를 꼭 품고 있었다.      


  몇 개의 방을 공유하는 형태의 펜션에 그와 함께 묵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휴가다운 시간을 가졌다. 온종일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더 지났고 쉬지 않고 달려왔던 내 일상도 여기서 처음으로 나른한 휴가를 얻었다. 늦은 아침까지 침대 안에서 꼼지락거렸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스페인식 오믈렛(Tortilla de Patata)과 산티아고 케이크(Tarta de Santiago)로 브런치를 즐겼다. 우리의 입에 꼭 맞는 전통 이탈리아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고 모둠 해산물도 먹었다. 부둣가에 있는 생선 경매 현장을 방문하고 부둣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서쪽 끝, 0km 비석이 위치한 등대에 다시 가고 싶던 나를 그는 벌써 몇 시간째 설득하고 있다.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바닷가, 거친 파도가 있는 야생 해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산티아고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어 했다. 엄마 손을 이끌고 새로운 친구를 자랑하고 자기만의 비밀 장소를 공개하는 꼬마처럼 그의 눈에는 온통 설렘과 순수만이 있었다. 소중한 것을 공유하고 싶은 그를 실망시킬 수 없는 나는 그를 따라나섰고 그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친 파도와 지독하게 아름다운 석양을 보았다. 수평선 너머로 해도 사라지고 천천히 어둠이 깔릴 때까지도 우린 해변에 머물렀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은 모래 아래에 발 담그고 그대로 누워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처음 보았던 은하수가 여기 하늘에서는 더욱 선명했다. 별들이 쏟아지고 파도의 거친 숨소리가 있는 이 해변에 그를 따라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 전, 늘 짚더미와 풀밭, 교회에서 비박을 했던 그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토록 사무치게 아름다운 것을 포기하고 칙칙한 숙소에서 사람들과 뒤섞여 함께 머물러 준 그에게 새삼 고마웠다.


  끝없이 달리던 우리의 수다도 이곳에서 눈에 띄게 줄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더욱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은 엄숙하거나 진지하고 무서운 형상이었는데 거기엔 지독한 슬픔과 간절함도 있었다. 걸을 때 그토록 느리기만 하던 시간이 피니스테레에서 이틀은 두 시간처럼 지났다. 진부하지만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은 없다. 바람처럼 지났고  마지막 밤이 되었다. 갈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이고, 한 달 반 카미노 일정의 마지막이며, 그와의 마지막 밤이다.      


  그는 우리의 헤어짐이 나만큼 슬프지 않아 보였다. 그의 눈은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그 눈을 바라볼 때마다 꾸물꾸물 피어오르는 섭섭한 마음은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대신 더 오래 그를 바라보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아도 그가 보이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바쁘게 살게 되어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아아, 그는 정말 소년과 같다. 사랑이란 감정을 몰라서 지독하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슴 시리도록 아픈 일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만큼은 모두 현재와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다. 경험이 쌓이고 감정을 배우면서 사람들은 더욱 이해관계를 꼼꼼하게 따지게 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이런 순수한 부분은 때때로 나를 감동시켰다.




  갈리시아에서 늘 그래 왔듯 밤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당연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궁상스럽게, 처량하고 슬프게 내렸다. 부슬거리는 빗줄기가 오늘은 조금 더 무겁고 촘촘하게 내려주어도 괜찮은데, 그래서 차도 막히고 기차와 비행기가 연착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순례자의 발걸음을 재촉하듯 더욱더 성기게 내린다. 소리 없이 머리를 적시던 비는 금세 어깨에 내려앉고 온몸을 적시어 마음까지 무겁게 했다. 빗속을 걸어 다시 산티아고로 향했다. 산티아고가 있는 갈리시아에 빗물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수많은 이들이 머물고 떠나면서 미처 챙겨가지 못한 감동의 여운과 아쉬움이 내리기 때문인가 보다.  



‘가기 싫다.’     



  어느새 주문처럼 속으로 되뇌고 있다. 갈리시아부터 나와 함께 해준 쓰레기봉투 위로 연신 빗방울이 떨어진다. 주변은 회색빛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간혹 기차 소리도 들려왔다. 산티아고 기차역은 생각보다 작아서 내가 타고 갈 열차가 들어올 플랫폼에 금방 도착했다.  

  무수한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함께 하는 동안 한 순간도 조용한 적 없었는데, 조잘거리던 그와 내 입은 말하는 법을 잊은 듯 깊은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저기..”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입을 떼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굳게 닫고 만다. 빗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점점 멀어지고 우리의 시간도 멈췄다.

  초록 냄새가 가득한 수풀과 맑고 영롱한 소리를 가진 아침 이슬, 그 사이로 슬그머니 내려앉는 안개와 눈부신 햇살을 받아 금빛 물결로 출렁이던 갈대밭, 바닷 갈매기의 노래와 따뜻한 잔내가 그득한 바다 냄새 그리고 그곳에 무거운 배낭과 기타를 메고 뒤뚱뒤뚱, 아장아장 귀엽게 걷고 있는 그가 있다. 나를 보며 웃던 그 미소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주머니에 조심히 담아 한국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그가 엄지공주처럼 작은 인형이었으면 좋겠다. 해마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그가 하나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하늘에 떠있던 구름 한 조각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오후에는 유럽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는, 그가 그런 구름이었으면 좋겠다. 이따금씩 찾아와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그 바람이 그였으면 좋겠다. 그도 내 옆에 당연한 어떤 것이면 좋겠다. 우리는 왜 헤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예정된 이별이고 당연한 과정인데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벌써 다 비워버린 커피가 담겨있던 종이컵을 몇 번이나 더 입에 가져다 대었는지 모른다.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는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듯 울렸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온 대지를 흔들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 안내 방송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한 번씩 내려앉고 심장도 빨라진다. 그러기를 몇 번하니 멀리서 내가 타고 가야 할 기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벤치에 꼭 붙이고 앉아 서로 먼저 일어나라며 미루다 어기적어기적 일어서고 마지못해 배낭을 집어 들었다. 기관사가 나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야, 거기 자네들 이 기차에 탈 참인가? 그렇다면 얼른 탑승해. 이제 곧 출발할 거야.”          



 이제는 정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돌아서는 내 팔을 그가 잡는다. 잡고도 움켜쥐지 못하고 힘없이 내려놓은 그의 손길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의 얼굴은 묻지 않아도 나와 같은 마음이란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기관사가 다급하게 호각을 불었다.           



“파비안. 이제 정말 가봐야 할 것 같아. 함께 걸어줘서 고마웠어.”    



  돌아서는 나의 팔꿈치를 그는 다시 한번 낚아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움찔움찔하면서 어떤 말도 쉽게 내놓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커다란 눈은 순식간에 가득 차오르고 망설일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다시 한번 우리를 재촉하는 기관사의 호각 소리에 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입술이 떨리며 말했다.           



“I like you very much. very much.”    


     

  씩씩한 척 노력했던 내가 그의 한 마디에 무너졌다. 애써 참아왔던 내 눈물도 그 한마디에 무너진 댐처럼 쏟아진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여기서 이렇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 순간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제 얼굴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을 하고선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따뜻한 그의 손이 살며시 감쌌다. 너무 소중해서 그동안 참고 참았으며, 아끼고 아꼈던 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아까 계속 마셨던 커피의 잔향, 그와 나의 눈물이 뒤섞인 짠 내음, 그리고 갈리시아 특유의 비릿한 비 냄새가 느껴졌다. 그 순간 기차의 출발 소리가 들렸고 나는 인사도 못한 채 다급하게 기차 안으로 올랐다. 그 찰나의 순간 그도 갑자기 기차로 뛰어들었다.           



“이거 지금 출발해. 얼른 내려!”

“알아...... 조심히 가. 아프지 말고, 잠은 꼭 잘 자고.”          



  서서히 움직이는 기차에 올라서 다급하게 몇 마디를 하고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가 나를 이렇게 꼭 끌어안은 것은 처음이다. 뚱뚱한 배낭과 나무 지팡이, 나에게 단잠을 선물했던 그의 통기타를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를 주렁주렁 달고 그 좁은 기차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의 체온과 향기를 느꼈다. 그리고 기차가 더 속도를 내기 전에 그는 서둘러 뛰어내렸다. 그의 몸만큼 커다랗고 뚱뚱한 배낭 때문에 휘청이는데, 그는 내리면서도 기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기차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기차역에서 그의 모습은 희미해졌고 산티아고 역 마저도 벌써 멀어졌지만, 나는 한동안 입구에 서서 움직이질 못했다. 가슴부터 터져나오는 슬픔을 다시 쓸어 담지도, 감당하지도 못해 주먹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기만 했다. 그렇게 삽십여분이 지났을까 그새 퉁퉁 부운 눈을 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흔들리는 기차 한쪽에 홀로 자리 잡고 있으니 다시 한번 뻔했던 우리 이별이 새삼 실감된다. 한 달 남짓 그와 한 시간은 30년의 세월처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차창으로 하나 둘 다시 빗물이 달려와 맺히고 있었다. 다시 비가 온다. 내 마음도 갈리시아처럼 계속 비가 내렸다.           



‘이제는 정말 그를 다시 볼 수 없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시간이 흩어지고 회색빛 빌딩과 매캐한 매연이 가득한 마드리드 도시 중심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가 나를 버리고 간 것도 아닌데 실연당한 것 마냥 쓸쓸하고 외로웠다. 내게는 낭만이 가득해야 할 유럽의 도시인데 흑백 필름처럼 고독하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는 공항에서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짐을 정리하고 침대 맡에 앉으니 그의 부재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그와 함께 했던 50여 일의 시간 동안 나는 지금의 이별을 두려워하느라 마음껏 그를 좋아하지 못했다. 겨우 마음을 열었는데 돌아보니 헛된 짓이었다. 처음부터 고민하고 걱정해야 했던 것은 이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하지 못했을 때 찾아올 후회였다. 모든 선택에 기회비용이 있을 수밖에 없고 최선의 선택만 있을 뿐인데, 그를 보내고 이제야 깨닫는다.  그가 떠나고 한참 눈물을 쏟아냈는데 아직 무엇이 더 남았단 말인가! 후회에 밀려 눈물이 서럽게 내리고 또 내렸다.



“이메일 주소 하나만 줘.”

“음......, 이메일 주소 기억이 안 나. 내가 일부러 어렵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잊어버렸어.”

“뭐야! 이 바보! 그럼 전화번호라도 줘.”

“전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쓸 일도 별로 없어서 내 번호가 기억이 안 나. 미안.”

“뭐야....., 요즘 젊은 사람들 답지 않게 웬 아날로그야?”

“독일이 원래 아날로그 스타일이야.”       



  언젠가 우리의 바보 같은 대화가 떠올랐다. 그 나이답지 않게 최신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자주 쓰지 않아 본인 주소도 기억 못하는 그가 재밌다며 웃고 떠들고 말 것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의 기회는 더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마저 하고.”

“조금 있다가 밥 먹고.”


  

  사소한 이유로 미뤘던 것이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내겐 그 흔한 이메일 주소도 없다. 이제는 정말 그와 연락을 이어갈 방법이 전혀 없었다.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큰 슬픔과 서러움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를 붙잡고 아무렇게나 새로운 이메일 계정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그가 귀찮아했다면 잔소리를 하고 부탁을 해서라도 했어야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마음을 열고 시간을 보냈을 것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느라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는가!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내가 말한 대로 되었다. 함께 하는 동안 좋아 죽겠다 하고 돌아서서 “안녕”이란 인사와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았다면 ‘그래서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이 진부한 동화의 엔딩처럼 끝날수 없더라도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냈어야 했다.



  그를 만나기 전 언제나 그랬던 밤들처럼 그날 밤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루고에서 그와 함께 들었던 거리 악사의 구슬픈 연주를 밤새 듣고 또 들었다. 아련한 선율을 따라 흐르는 슬픔도 멈출 줄 몰랐다. 그것이 예정된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가슴은 한 겨울처럼 시리고 사무치게 깊은 그리움의 고통은 매 순간 엄습해온다. 헤어진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었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붙이고 한쪽 구석에 앉았다. 공항은 내게 언제나 설렘이 가득한 장소였다. 나고 자란 도시와 나라를 떠나 언제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설렘이 가득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공항, 웃는 사람들, 포옹하는 사람들, 키스하는 사람들, 간혹 우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일시에 강한 공허감이 들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천천히 공항을 걸으며 생각했다. 숙소에 두고 온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들은 다 챙겼는지 꼼꼼하게 생각했다. 공항 면세점 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떼를 쓰며 울고 있었다. 화난 엄마는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앞서 걸었다. 졸졸 엄마를 따라 걸으며 우는 그 아이를 보다 그만 나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작은 배낭을 메고 아장아장 걷는 그 아기를 보면서 그가 떠올랐다. 나는 그를 잃었다. 그리고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