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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우리 하루, feat. 독일

우리의 부부 싸움


토마스 씨는 정말 피자 몬스터라고 스스로 별명을 지을 만큼 피자를 아주 좋아한다. 

다행인 것은 자기 피자에 자부심이 있어서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서 해 먹으니 좋다. 

그런데 또 자기 피자 부심이 대단해서 내가 안 먹으면 또 엄청나게, 무척, 많이, 매우, 몹시 서운해하는 거다. 



"여보, 피자 먹고 싶다. 피자 해 먹자."

"나는 별로 안 당기는데.."

"그럼 뭐 먹고 싶은데?"

"김치 볶음? 김치찌개? 김치 비빔국수? 김치말이 국수?"

"싫어. 피자 먹자."



먹는 걸로 이런 사소한 다툼을 가끔 한다. 

왜냐하면 대화는 이렇게 사소하게 시작하지만, 

'먹고 싶다, 같이 먹자'파인 토마스 씨의 설득과 

'싫다.' 파인 내가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냥 혼자 해 먹으면 좋은데 꼭 '함께' 먹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혼자 먹기 위해서 피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먹고 싶을 때마다 같이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렇게 몇 년을 나름 내 선에서 맞춰(?) 주면서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짜증이 났다. 


나는 강요하거나 꼬드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남편이 새 김치만 먹고 신김치나 김치로 조리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강요하지도 않고 먹자고 꼬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서운함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밀당이나 사소한 다툼이 싫어서 웬만한 부분을 조율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서운함이 쌓였던 모양이다. 이유는 이랬다. 


토마스 씨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꼭 먹어야 하니까, 어쨌거나 피자를 만든다. 

그럼 나는 먹고 싶은 게 있었어도 같이 먹자고 하는 남편 때문에 남편이 먼저 피자를 다 만든 후에 조리를 하게 되다 보니까 시간도 늦어지고 귀찮아서 같이 먹곤 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며칠 전부터 김치가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김치로 뭔가 조리해서 먹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해 놓으면 나도 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또 내가 먹을 분량까지 피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뭐랄까. 



피자를 해 놓고 얼른 맛보라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기 피자 먹고 맛있다고 최고라고 말해달라는 그 눈빛. 

슈렉에 고양이가 나와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애원하는 그 눈빛. 


그 눈빛에 실망감을 주기 싫어서 같이 먹고 조금 과장해서 좋다 해주고 했는데, 그날 따라 이렇게 평생을 연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그래. 남편을 위한 내 사랑이라고 해두자.'


라는 생각에 했지만, 남편은 내 김치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서 들었던 서운한 순간의 마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퇴적층처럼 쌓여서 '왜 나만?' 이런 생각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나. 피자 안 먹어! 오늘은 꼭 김치를 먹어야겠어!"


라고 강하게 말하고 주방으로 가려는데,

남편의 그 슈렉 고양이 눈빛이 급격하게 실망의 눈빛으로 바뀌는데 그게 너무 미안한 거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김치가 먹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김치 볶음, 김치찌개가 눈 앞에서 아른아른했었단 말이다. 


그런 내 간절함이 실망한 토마스 씨의 눈빛에서 좌절되고

실망의 눈빛은 짐짓 분노의 눈빛으로 살짝 변해가고 있었다. 

서운함과 얄미움이랄까. 그 표정을 어떻게 설명한 길이 없다. 

대충 카톡 이미지로 표현하면 이러하다. 


"내가 얼마나 맛있는 피자를 만들었는데! 흥칫뿡!"

"이렇게 맛있는 피자를 두고 김치를 먹다니, 이해 불가하군."

"내 피자 자부심에 감히 스크래치를!"


추측이지만, 뭐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그런 표정을 보자니 또 마음이 약해져서 피자를 두 조각 들고 와서 먹었다. 

먹는데, 그날 따라 막 서운함이 폭발했다. 


"그래. 당신 피자 맛있어! 누가 맛없대?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야. 매일 피자만 먹고살 수 없어.

나는 차라리 매일 김치만 먹고사는 게 더 좋아. 

당신한테 김치 먹으라고 강요한 적 없잖아. 

당신은 왜 당신 피자를 먹으라고 눈으로 강요하는 거지?

나는 오늘 정말 김치가 먹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한국 사람. 

나는 피자보다 김치가 더 좋은 한국 사람. 

당신은 독일 사람. 

당신은 김치보다 피자가 더 좋은 독일 사람. 

누가 당신 보고 피자 만들래? 당신이 먹고 싶어서 만든 거잖아. 

그런데, 내가 안 먹는다고 왜 그런 서운한 표정을 짓는 거야. 

나는 분명 오늘은 반드시 '김치'를 먹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말한 대로 김치 볶음을 해 먹으려고 하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마음이 약해져서 피자 먹고 있잖아. 

싫어. 피자를 먹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오늘은 김치가 더 먹고 싶은 거뿐이야. 

당신은 강요한 적 없다고 하지만, 눈으로 강요했어. 분명했어. 

그래서 나는 지금 피자를 먹어. 그런데 싫어. 김치 먹고 싶어. "


유치하고 속 좁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르게 막 쉬지 않고 속사포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그걸 들으면서 처음엔 황당해하던 남편이 미소를 짓더니 나중엔 혼자 빵 터져서 웃고 있었다. 

나는 심각해서 막 울 것 같은데, 남편은 웃고 있어서 얄미웠다. 



"미안해. 그냥 서운했던 표현인데, 당신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 몰랐어. 

피자 안 먹어도 괜찮아. 나도 강요한 거 정말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당시는 정말 엄청나게 서운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너무 유치해서 자다가 이불 팡팡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런 사소한 다툼을 피할 수가 없다. 

오늘은 토마스 씨가 "당신 래퍼인 줄.."하면서 웃고 끝냈지만, 

보통 음식처럼 사소한 것이 아닌 것은 서로 서운한 점 표출하다가 싸움이 되기도 하니까.


외려 한국에선 빵순이라고 할 정도로 빵 좋아해서 매일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케이크 사다가 먹고 했지만 독일에서 살고 1년이 지나니까, 

왜인지 빵이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빵을 먹을 때도 나는 다 먹고 

입가심으로 꼭 김치나 깍두기 한 두 개를 집어 먹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집어 먹기에 김치는 조금 귀한 음식이 돼버렸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것 같다. 


싸움의 출발한 사소한 거지만,

결국은 서운함을 쌓아둔 결과다. 

남편은 강요한 적도 부탁한 적도 없는데, 배려라는 이름으로 혼자 남편을 맞춰준 것이다. 

내가 스스로 했으면서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지한 적 없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서운함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토마스 씨는 내가 자기 피자뿐 아니라, 피자를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냥 좋은 거지 엄청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었고

그마저도 독일에서 살면서부터는 그냥 좋은 정도도 아닌 게 돼버렸다.

입맛이 상당히 서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토종 한국 입맛이다. 나는. 

그냥 한국 음식이 더더더 좋다. 


앞으로는 억지로 같이 피자 먹고 과장해서 좋다고 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때 그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오해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