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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Monologe

너는 나랑 왜 친하게 지내?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기억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좋던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싫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나를 매일 괴롭혔던 초등학교 때 내 짝꿍.
하굣길에 자주 마주쳐서 설레던 동네 오빠. 
맨날 뒤에서 쿡쿡 찌르며 쪽지 전달하던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늘 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어서 쌍둥이라고 놀림받았던 대학 동기. 
언제나 해맑은 웃음 뒤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갖고 있던 옹알이 모임 사람들. 
정 많은 기초반 친구들.
욕심 많던 연수반 동기들. 
착한데 겸손하기까지 한 전문반 언니들. 
마녀사냥을 좋아했던 유난히 유치했던 대학 때 그 무리들. 
이제 얼굴도 기억 안나는 초등학교 때 내가 처음 한 ‘풋사랑’의 그.
여행에서 만난 ‘아직’ 천진했던 꼬마들. 
나를 참 많이 좋아해줬던 고마운 사람들. 
내가 참 많이 좋아했던 사람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기억. 저런 기억. 

한때는 기억이 스치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기억이 지워지는지 몰랐지만, 부단히 노력했었다.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 시간들이 잊혔다. 

​그런데, 그 시간 속에서 간직하고 싶었던 소중한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더라.


그래서 이제는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도 전부 기억하고 싶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못할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하나보다. 
 



이쁘게 생긴 그녀는 말도 이쁘게 잘했다. 
아마 녀석이 남자로 태어났어도 무조건 이뻤을 것이다. 
착한 사람은 그래서 다 예쁜가 보다. 
어린아이처럼.
 
“나는 말투도 쌀쌀 맞고 다정하지도 않은데 나랑 왜 친하게 지내?”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서 친구든 애인이든 이런 질문을 곧잘 했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마냥 행복해하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는 며칠밤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맞아. 언니 말투는 안 친절해. 그런데도 언니한테는 ‘정’이 느껴져.

언니는 한번 연을 맺으면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끈끈한 ‘정’ 같은 게 느껴져 ”
 
그때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아마도 “녀석 눈치 있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농담 던지듯 내 진심을 말했다. 
 
“ 너 사람 잘 알아본다. ”
“ 거봐 ”
“ 근데 난 돌아설 때는 매정해. 의외로.”
“ 알아. 그래도 다시 그리워하잖아. ”

 
무서운 녀석이라고 그리고 사람 보는 눈썰미가 있어서 너도 맘고생 많았겠구나, 했다. 
녀석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그 시간의 나처럼.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울지 않았다. 
맘을 들켜버려서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울어버리면 미안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따뜻한 대화를 하지 못할 거 같아서 울음을 삼켰던 것 같다.
아마 녀석도 그래서 울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녀석이 누구였는지 잊었던 것처럼 녀석도 우리의 대화도 기억 못할 테니까.



만약에 녀석이 우리 대화를 기억하고 자기랑 대화한 걸 잊었다고 서운해하면 어쩌지?

그렇게 되면 조금 난감한데.....

그냥 모른 척하고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런 녀석이라면 아마 아직도 내 옆에 붙어 있으리라. 
이런 녀석이라면 내가 두고두고 보고 만나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예쁜 사람과 내가 멀어질 리 없다. 
멀어졌어도 언젠가 분명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니면 녀석이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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