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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한국 김밥의 갑질

독일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울 때는 아무래도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이다.

그중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먹었던 것들을 더는 당연하게먹을 수 없을 때이다.

가령, 방앗간에서 2천 원에 한 팩 사 먹는 떡이나 지천으로 널린 분식집이나 편의점에서 매우 손쉽게 1-3천 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김밥이 있다.

, 그리고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700원 정도에 사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내 사랑 김밥과 삼각 김밥은 이제 아주아주 특별한날에 아주아주 맘을 먹고 직접만들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히 김밥은 정말 이틀에 한 번은 사 먹었던 나의 일용한 양식이었다.

만들어 먹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닌데,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라 자주해 먹지 못하는데, 그래서인지 한번 하면 김밥 장사 할 것처럼 끊임없이 말고 또 만다.

 

이런 김밥은 우리 시부모님도 매우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데,

어느 날 시누가 자기 남자친구와 함께 꼭 김밥을 먹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대충 말면 끝나는 일인 줄 알고 있는 시댁 식구들에게 얼마나 힘든 음식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모든 재료를 들고 시댁으로 향했다.

 

시금치, 당근, 단무지, (밥통), (나는 비엔나소시지), 참치, 마요네즈, 슬라이스 치즈, 우엉(구할 수 있을 때), 달걀, 소고기(육식을 사랑하는 남자들 때문에), 참기름, 간장, 물엿, 소금, 후추, 참깨를 펼쳐 놓으니 여기서 첫 번째로 놀랐다.

 

이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다니!!

독일에서 우엉을 쉽게 구할 수는 없는데 나는 되도록 같이 만들어 먹는다.

꼭 우엉까지 들어간 김밥을 맛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 우엉을 다듬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우엉을 다듬어 보면 알겠지만, 껍질에 진물이 나기 때문에 벗기고 씻는 것뿐 아니라 썰기도 매우 피곤한 작업이다. ㅠㅠ)

 

재료 준비 과정,

1. 시금치 데치고 소금, 후추 간하기.

2. 당근 껍질 다 벗기고 기름에 살짝 볶아주기.

3. 쌀 씻어서 밥통으로 밥하기.

4. 비엔나소시지 잘라서 역시 살짝 볶아주기.

5. 참치 통조림에서 물을 빼고 마요네즈에 소금, 후추를 섞어 그릇에 담아놓기.

6. 슬라이스 치즈 반으로 잘라 겹치지 않게 펼쳐 놓기.

7. 우엉(이게 진짜 복병!) 껍질을 까서 간장과 물엿으로 간하며 볶기.

8. 단무지 썰어 놓기.

9. 계란말이 부쳐서 잘라 놓기.

10. 밑간한 소고기 볶아 놓기.

 

두 번째로 과정을 함께 준비하며 경악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김밥 말기.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며 서로 한 번씩 시도해보다가 포기.

결국, 혼자서 16줄을 연속으로 돌돌 말고 썬 다음, 위에 참기름 골고루 바르고 통깨까지 올려서 마무리.

너무 진이 빠져서 예쁘게 담는 것은 포기하고 대충 담아 놓았더니 모두 사진 찍기 바빴다.


그리고 200유로짜리 김밥이라며 환호를 하며

우리나라 국민음식인 김밥이 독일에서도 그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독일의 국민 간식은 케밥인 것으로  ㅠ ㅠ 

(깨알 같은 케밥이 국민 간식인 이유 : http://varamizoa.tistory.com/70 )

 

전쟁 같은 김밥 말이가 끝나고 전투적으로 먹어치운 시댁 식구들은 너무도 행복했지만,

독일에서도 우리의 국민 김밥이 사랑받아 나 또한, 많이 행복했지만,

김밥 만들기 전쟁을 한 번 본 이후로, 시댁 식구들은 쉽게 김밥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남편도 김밥이 먹고 싶을 때는 내 눈치를 먼저 살핀다. ㅎ

 

괜히 피곤하냐고 묻는 다거나,

김에다가 밥을 말아 먹는 게 김밥이냐고 생뚱맞게 묻는 다거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김밥을 먹은 게 언제지? 라고 혼잣말을 한다거나, ㅎㅎ


그 와중에 남편에게 참 고마운 것이 있다. 

언젠가는 자기도 김밥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주먹밥)은 만들 수 있다며 혼자 뿌듯해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공부하다가 배고프면 가끔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나 없을 때는 혼자 참치마요 주먹밥으로 알아서 끼니를 때워주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는 독일에서 김밥으로 갑질할 수 있다. 

먹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