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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불혹의 얼굴에서는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연초에 있었던 에피소드 그 이후, 

http://varamizoa.tistory.com/55 - 외국인 남편 놀라게 한 한국식 농담 )

지층 집 아주머니를 집 앞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집 방과 화장실 창문이 뒤쪽 주차장으로 나 있는데, 

우리 차고가 그 집 바로 앞에 위치에 있다. 

우리가 그 집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 댁에서 사람이 얼굴을 내밀면

오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구조이다. 


차를 빼러 나오는 나와 눈은 아주머니가 보일 듯 말듯 살짝 웃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조금 믿기가 힘들다. 

조금 더 지나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고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말 그 아주머니에게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과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아주머니 얼굴은 항상 화가 난 듯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화가 조금 누그러든 인상이 되었다. 

완전히 화사하게 온화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좋아졌다. 

정말 이 아주머니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불혹의 나이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


실제로 연구 결과도 있었는데, 

얼굴의 인상은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사람이 생각하면 그 생각은 곧 마음이 되고 

마음을 먹으면 감정이 되어 말이나 표정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화를 자주 내어 생기는 주름과 잘 웃어서 생기는 주름이 분명 다른 것처럼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주름들이 얼굴에 '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을 잘 안 본다. 

보통 아침에 준비하고 나오면서 한 번 보고 식사 후에나 잠깐 확인차 거울을 보게 되는 것 외에 

화장실에 붙어 있어 강제로 보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씻을 때까지 두 번이 전부다. 

어렸을 때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 거울을 보지 않게 된 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그래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을 맹신하여

해마다 보름달을 보며 예뻐지게 해달라고 꼬박꼬박 빌었던 시절도 있었다. 


잊고 살던 어느 날 본 거울에 내 얼굴에서 '못남'을 발견했다. 

예쁘고 못생기고와는 차원이 다른 어떤 부정적인 기운이었다. 

뭐랄까, 심술, 우울함, 자신감 없음과 같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후, 일부러 거울을 자주 보려고 노력하며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이 얼마나 긍정적인 기운이 생겼나 보기 시작했다. 



"나이가 불혹쯤 지나면 그 사람 얼굴에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고, 인성이 드러난다."



어디에서 어떻게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이 주는 강력함은 매우 컸다. 

어쩌면 그때 예로 들었던 어떤 유명인(또는 배우)의 얼굴 변화에서 내가 설득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맘고생을 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났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걸어들어오는 데 저 멀리서부터 무언가 우울한 기운이 느껴지더란다. 

그 사람이 무당이나 촉이 예민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내가 앉았는데 얼굴이 못 본 사이에 팍 늙은 것 같고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이라도 펑펑 눈물을 쏟을 것 같이 터져 나오는 우울함이 있었다고 했다.

한동안 늘 만나던 사람 외에는 잘 만나지도 않았고

그들은 이미 내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데다 가끔이라도 보아왔으니 

굳이 그런 기운의 차이를 느끼지도 못했고 느낀다 한들 굳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보니 정말 그 사람 말과 다른 것이 없었다. 



가끔 중년 이후의 사람들을 만나면 10대나 20대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인데,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이 갖은 '아우라'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그 아우라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인격이 적절하게 뒤섞여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얼굴에 가장 잘 드러난다. 

예쁘고 못생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풋풋한 젊음과 상큼한 활기, 긍정적인 열정들이 주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정말 다르다. 

중년 이후의 사람들은 인생을 70이나 80을 놓고 보아도 이미 반생을 살았기에 

그들만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간혹, 사기꾼들과 같은 사람 중에서도 온화한 인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이득을 취하며 얼마나 행복했으면 

얼굴에도 그 행복이 온화함으로 묻어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인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눈매라든가, 눈동자의 색이라든가, 어딘가 맑지 못한 부분이 꼭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요즘은 좋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 남에 대한 어떠한 관점까지도

웬만하면 좋게 보려고 노력한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져도 그 속에서 온화함이 묻어나는 할머니로 늙고 싶기 때문이다. 

얼굴에 우울함이 묻어나던 그 시절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거울을 보며 주문을 외우듯 다짐한다. 


불혹이 어릴 땐 정말 '늙은' 느낌이 강렬했는데,

막상 코앞에 서고 보니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 것 같다. 

어릴 땐 항상 예뻐지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온화하게 나이 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좋은 인상을 가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많이 웃고, 미소 짓고 그런 것?

물론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깨진 독에 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 물을 계속 붓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깨진 부분을 확실하게 고치거나,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새로 독을 사야 하는 것과 같다.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지 않은 채 웃는 연습을 하면 당장에는 효과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다시 힘들고 괴로운 일들과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면? 

관성의 법칙처럼 쉽고 허무하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바르고 좋은 생각을 해야 웃을 일도 많아지고

마음에 근심이 쌓여도 그 생각에 매달려 있지 않고

생각에서 벗어나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최고다.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도 그래서 연습중이다.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