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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오늘 하루, feat. Thomas 씨

외국인남편 놀라게 한 한국식 농담 / 독일식 아파트

(쓰다보니 길어졌다. 스압 주의 ㅠㅠ, 아래 요약본 참고)


외국인 남편이라고 제목을 달면서도 항상 조금 웃긴 게

정작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건 '나'인데 ㅎ

한국인이다 보니 한글을 쓰고 한국 인터넷에 글을 올리니

마치 우리가 한국에 살면서 쓰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뭐, 어쨌든.

이번엔 내가 이번에 한국식 농담을 했다가 남편을 뜨악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새 창을 열었다.


우선 사건을 들어가기 전에 사건의 배경을 조금 설명해야 한다.


사진을 다 뒤져서 찾아봤는데 우리집을 정면으로 찍은 사진은 없다. ㅠㅠ

아쉬운대로, 이거라도, 우리 집이 앞쪽 뒤쪽 발콘이 있는데,

이 사진은 앞쪽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이라 사진으로 보이는 집들은 뒷쪽 발코니 인 셈.

뒷쪽은 저렇게 튀어 나와 있는 발코니고 앞쪽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발코니.

대충 건물 생김새는 저렇다.


우리가 사는 집은 한국식으로 보면 연립주택이나 맨션 같은 형태인데,

이것이 위로 높은 게 아니라 옆으로 길다.

독일에서는 이런 집의 형태를 따로 부르는 말이 있지만 한국식으로는 아파트 형태라고 본다.

* 아래 발 그림 주의 ㅠㅠ


대충 그려봤는데 정면에서 보면 입구가 있고

입구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집들이 있다.

한 덩이를 한 동으로 보고 이런 낮은 층수의 동들이 가로로 여러 개 붙어 있는 모습이다.

위에는 3개만 그렸지만, 우리 집을 포함한 이 근처 아파트는

저런 동이 5개 정도 붙어 있는데 그냥 일렬로 나열한 구조가 아니라

밑에 검은색 처럼 살짝씩 엇갈려서 구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핑크색 화살표가 들어가는 입구.

대충 이런 구조이고

내가 사는 집이 가장 끝의 동에 노란색 부분이고
문제의 이웃은 우리 밑에 밑에 집, 즉 한국식 1층에 산다.


독일은 지층이 대부분 땅에 바로 붙어 있지 않고

1.5층쯤 되고 아래는 반지하로 대부분 창고 형태이다.

그리고 그 1.5층을 지층이라고 하고 그 위로 1층 2층 이렇게 부른다.

즉, 지층에 사는 이웃과 독일식 2층 (한국식 3층)에 사는 우리 집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게 벌써 만으로 3년을 넘기고 4년째 살고 있는데,

우리가 살기 전에 처음엔 우리 시부모님이 사시고 나중엔 지금은 돌아가신 시할머니(시아버지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두 약 40년을 사셨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비어있다가 우리 부부가 이사와 살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에 오래 살아온 이웃에게 남편의 성은 이미 익숙한 셈이다.

(프라이버시 문제와 편의상 남편의 성을 '김'씨 정도로 표현함)


처음 이주하고 새로운 마음에 주변 이웃들과 웃으면서 안되는 독일어로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유독 저 지층 집 부부만 유난히 까칠했다.

처음엔 내 인사를 못 들었나 싶어서 여러 번 말했는데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부모님께 기분 상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시부모님께서 하는 말씀이 그 집은 그 동의 트러블 메이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날이 좋아지면 발콘에 나와서 하루종일 있는데

거기서 밥 먹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종일 발콘에 있는다.

은퇴한 부부라 할 일도 딱히 없어서 발콘에 자신들의 정원 손질도 엄청 공을 드리는 것 같다.


그렇게 하루종일 거기 앉아서 사람들 오가는 걸 보다가

누가 뭘 잘 못 하거나 실수를 하면 일일이 잔소리하고 핀잔주고 싸우는 게 그 부부 일상이었던 것.

다른 사람들은 이제 그 부부 성향을 아니 싸우기 싫어서 일부러 트집 잡힐 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던 것.

생전에 시할머니와도 하루가 멀다고 다투셔서 사이도 좋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그냥 싫었던 거다.

(그러니 인사도 안 받지, 그래도 인사는 받지. ㅠㅠ 같은 사람도 아니구만)


인사하고 친해져도 골치 아픈 이웃이니 그냥 나도 인사를 하지 말라는

시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나도 인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기분도 나빴고.


그러던 볕이 좋은 어느 봄날,

한국의 깻잎과 매운 고추가 그리워 발콘에 키우기 시작하면서

물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밑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비가 오면 물이 잘 떨어지라고 발코니 양쪽에 있는 빗물용 구멍으로

물이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발코니 형태는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형태가 아니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형태라 발코니 난간에 건 화분에 물을 주다가 흘리거나

아님 발코니 안에 있는 화분에 준 물이 넘쳐 빗물용 도랑으로 조금 흐르는 게 다다.

참고로 우리 발코니 사진을 보면,





화살표 해 놓은 것처럼 원래는 바깥으로 화분을 건다.

그래야 비 오면 비도 맞고 하니까.

주변에 수많은 집을 보면 다들 그렇게 달았고

다들 거기서 물을 줄 것이며, 단 한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고 물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발코니가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거라

제일 처음 사진 같은 발코니보다 물이 떨어지는 것이 적고

물이 떨어진다고 해도 소량이며 건물 안쪽에 발코니가 있으니

떨어진 물이 아랫집 발코니 안쪽으로 튈수도 없는 구조라는 거다.


그런데, 지층집 부부가 갑자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김씨! 김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또 김씨네 집이지!!! "

라고 버럭 하더니 두 부부가 쿵쿵 소리를 내며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벨이 부서지도록 눌렀고

나갔더니 삿대질을 해가며 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말라고 난리인거다.

아무도 물을 안흘리는데 왜 너희 집만 물을 '뚝뚝' 흘리느냐고. ㅠㅠ


다투기 싫은 우리 부부는 알았다고 하고 부부를 돌려보냈고,

나중에 나가면서 보니까

우리 아랫집과 윗집은 화분을 마지막 사진처럼 다 안쪽으로 걸었다. ㅋㅋㅋ

어떤 집을 봐도 아무도 안으로 화분을 건 집이 없는데

우리 동, 우리 라인의 집들만 다 화분을 안으로 걸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우리 부부.


나중에 시어머니께 들었는데, 우리 아랫집, 윗집, 다 한바탕 우리처럼 일이 있었고

그 뒤로 봄에는 화분을 안쪽으로 건다고.

우리도 그날부터 화분을 안쪽으로 걸고 그 뒤로 싸움을 피했다.

물도 남들 다 잠든 시간인 밤 11시나 12시쯤 줬다.

혹시라도 도랑으로 물이 흐를까 봐.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 부부가 그들과 인사도 섞지 않고 지내길 벌써 3년이 넘고 4년째.

네 번째 크리스마스가 왔고 새해가 왔다.



아침에 나가는 길이었는데,

그 부부의 여자를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들어오는 길이었고 나는 나가는 길이었는데

문 앞에 그녀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손에 짐이 많아 문을 낑낑대면서 닫으려고 하는 거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어차피 우리가 나가는 길이니까 문을 잡아줬는데,

갑자기 그녀가 환하게 웃는 거다.


나는 너무 놀랐다.

오다가다 수없이 마주쳤고 동네 슈퍼나 상점에서도 마주쳤고

우리가 마주치지 않더라도 멀리 지인과 함께 있는 모습도 수없이 봐왔지만,

그녀가 웃는 것을 지난 3년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좀 얼떨떨해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계속 환하게 웃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거다.

얼떨결에 그렇게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김씨의 아내인 걸 알고 인사한 것일까.

웃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새해 인사까지.


너무 놀란 나는 그날 저녁 남편에게 그랬다.


아랫집 그녀, 죽을 때가 되었나 봐. 사람이 갑자기 이상해졌어. 확 변했어.

라고.

그랬더니 남편이 사색이 되어서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며 나를 다그쳤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도 남편은 여전히 나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당신,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죽을 때가 되다니.

우리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그런 말을 한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ㅠㅠ 나는 조금 억울했다.

적당한 표현 방법이 없어서 독어를 직역해서 말했을 뿐인데.

그래서 내가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의 죽음을 보고 확 변해서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웃으며 크리스마스 인사와 새해 인사를 했던 그 영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구두쇠 영감 이야기를.


그런데.

그런데.

남편은 그 영감을 몰랐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몰랐다.

우리 남편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우리 시댁도 모르고 주변에 다른 어떤 독일인도 그 이야기를 몰랐다.

(물론,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너무 컬처 쇼크였다.


어떻게 구두쇠 스크루지를 모를 수가 있지?

결국,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모르는 남편은 나를 악녀 취급했다.


나는 그저 억울했을 뿐이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요약 정리

사이가 안 좋은 이웃이 어느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기에 놀라서

남편에서 그 사람 죽을 때가 되었나봐, 라는 농담(굵은 글씨)을 했다가 악녀 취급을 당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