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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잡생각 두 가지

1.

어른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시점으로 바뀌기 시작한 순간,
지나온 시간이 불과 며칠 전일까지도 아득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 같다.
얼굴의 주름도 나이도 아닌 이런 느낌들에서

더 이상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라 나이 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낯섦이 더 익숙해지면 그땐 어느새 할머니라 불리고 있을까.



2.

사랑과 애정이란 감정은 만드는 게 아니라 저절로 생겨나는 거지만,
그 마음을 지켜가는 건 관심을 갖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우리 사이에 있던 어색함과 거리감을 추억으로 덮어 쌓아 올리는 매우 수고스러운 작업과 같다. 
 
그러므로 이유가 많고 언제나 상황이 안되는건  그만큼 할애할 여유가 안 된다는 것,
즉, 그만큼의 의미가 안 되거나 한쪽의 마음이 다른 쪽 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거다.  
 
시간은 생겨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굳이 만들어 내는 거니까.
그래서 균형이 맞지 않는 애정은 언제고 틀어지기 쉬운 것이다.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특히 영원한 것이란 거의 없다.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고,

그렇게 미워하며 원수처럼 인연이 끊긴 누구는 왜 그렇게 미워했었는지

그 기억까지 같이 끊어져 문득문득 궁금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많은 관계에 집착하고 살았을까.

멀리 나와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멀어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관계는 그렇게 멀어지는 대로 두고 볼 줄도 알고,

지금 자주 보고 좋아 죽는대도 그게 꼭 영원할 거라 일부러 기대하지도 않는다.


친구도 좋지만 가족이 너무 소중해졌고

새로운 만남도 좋지만 이미 익숙하고 소중한 사람들 지키며 살기도 조금씩 버거워진다.


그래서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며 살아가지는 대로, 살아가는 대로 살게 된다.





3.

이따금 볕이 들긴 했지만, 오늘처럼 종일 해가 짱짱한 것은

독일에서 2016년 되어서 처음이었다.

열흘 하고 또 이레가 지나서야 처음이라니.

징그러운 독일의 겨울 날씨.


독일에 철학자가 많은 이유가 거지같은 독일 겨울 날씨 때문이라는

그 우스갯소리를 몸소 체험하며 더이상 그것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