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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동생을 보내고


공항에서 동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지 4시간이 지났다.

내가 한국을 다녀간 지 좀 되었던지라,

그전부터 놀러 오라고 계속 꼬셨는데,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다 보니 옆 동네 오듯이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단비처럼 찾아온 겨울 특가 상품.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꼬시기가 먹혔고 동생은 그렇게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리고 지금 내 표정은,

아래의 오리와 같은 표정이다.

울상.



한국에 도착하면 동생이 여행 중에 내 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주려고

핸드폰에서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다가 발견한 이 오리.

꼭 우리 자매 같았다.


이번에 다녀간 내 동생은 막냇동생인데,

5년 전, 만 30살 막차를 타고 호주 워킹을 다녀왔다.

거의 2년을 채우고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나는 독일로 넘어왔고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방문했었지만,

결혼식 준비와 함께 오신 시부모님들 관광 도와드리고 하다 보니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 너무 없었다.

당연히 동생과도 언니와도 그랬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러버리고 보니

동생이 워킹을 떠난 시점부터 이번에 방문하기 전까지

근 5년을 우리 사이에 제대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이 기다려지던 방문이었다.


오기 전엔 시간이 그렇게도 더디더니

엊그제 방문한 것 같은 동생을 벌써 보내고 왔다.

보낼 때 울 것 같았지만, 막상 공항에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게이트 앞에 서고 보니,

야속하게도 오늘따라 대기하는 사람 없이 하나 없이 휑한 거다.

기다릴 필요도 없이 낙하산 타듯 한번에 보완대까지 30초도 안 걸릴 거 같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오만 잡생각이 다 스쳤다.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끝내 못 사준 것.

동생이 갖고 싶었는데 못 사준 것.

동생이 좋아할 것 같아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못 간 곳.

선물로 준 화상 크림을 대용량으로 사줄 걸 하는 생각.

보낼 때 그냥 새 옷 하나 사서 입혀 보낼 걸 하는 마음.

생각해 보니 용돈 한 푼 안 줘서 보낸 것.

가족들 선물 조금 더 챙길 걸 하는 생각.

동생 오는 날, 마중 나가면서 보자마자 티격태격해서 미안한 마음.

가기 직전에 너무 맛없은 점심을 먹여서 미안한 마음.

등등

그런 생각들이 주르르 스치더니 눈물도 어느새 후두두 떨어지더라.

그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미안한 마음.


왜 어릴 땐,

이렇게 예쁜 동생 놔두고 친구들이 좋다고 그렇게 밖으로만 나돌았을까.

그땐 가족보다도 집이 참 버거워서 무조건 집이 싫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 짧은 순간,

내 앞에 당장 닥쳐 힘들었던 일들 때문에 너무 동생들한테 제대로 베풀지도 못하고

제대로 해준 것도 없었구나...하면서

깊은 후회까지 몰려왔다.


동생을 보내기 며칠 전 밤,

오랜만에 오랜 시간 수다를 떨면서 자각하게 된 부분인데

한번 자각을 하고 나니 그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계속 눈물만 나는 거다.

동생 몰래 숨어서,

남편 몰래 뒤에서,

혼자 훌쩍훌쩍 했다.


떨어져 살아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오랜만에 수다를 떨면서 인지하게 된 것인지..

늘 아기 같았던 막냇동생도 어느덧 나처럼 나이를 먹어가서 인 것인지...

시간이 서럽고 너무 철없이 모르고 살았던, 아니 너무 내 아픔에 집중했던 내가 야속했다.


주책없게 공항에서 울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저 미안한 마음이 망설임 없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얼른 떨어진 주책들을 훔쳐 버리며 동생을 보내고 한참을 서서 지켜 보았다.


멍청하게 서서 멍하게 동생을 바라보는 나를

주책없이 질질 짜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맘 약한 우리 동생은

몇 걸음 걷고 돌아보기를 반복하고 매번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제 눈도 뻘겋게 충혈되어서는.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한 남북한 사람들로,

논산에서 애인 보내고 질질 짜는 이십대 꽃띠 커플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작별을 하는 줄로 알았을 거다.



우리, 다시 안 볼 사람 아닌데..

휴가 때 한국 가면 볼 수 있는데..

이제 맘만 먹으면 쉬이 볼 수 있지 않아서인지..

너무 오랜 만이어서 반갑고도 섭섭한 마음에서 인지..

그 짧은 입구를 어리어리, 요리조리 헤매며 입구를 찾는 동생이 사랑스러웠는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생이 갔다.


3주를 조금 못 채운 시간을 보내고 지금쯤 내 동생은 비행기 안에서 쿨쿨 자고 있겠지.


동생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동안 동생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처음으로 동생이 내게 솔직한 마음을 비쳤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마음이 너무 어렸고 그릇이 작았던 것 같다.

조금 일찍 알아주지 못해서 무척 미안했다.



동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너머로 천천히 지고 있는 해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벌써 5시인데 아직도 해가 조금 남아 있었다.


아, 이제 낮이 점점 길어지고 있구나.

동생이랑 함께 한 시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떠나는 막차 잡아타듯이 허겁지겁 만나고

허둥지둥 시간을 보내고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해도 바뀌어 있었다.


유난히 볕이 없고 낮이 짧은 독일의 겨울이기에

밤이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기를 늘 기다려왔는데

동생을 보내고서야 인지했다.

그렇게 기다려왔건만....,


그래서 였을까.

매일 보는 해가 언제나 그렇듯 같은 자리로 그저 지고 있는데,

오늘 따라 붉은 빛은 더 붉고 어둠이 더 짙어 보였다.

그냥 낯설게 더 우울해 보였다.






그래도 동생 덕에 이번 겨울은 덜 우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보낸 시간도 생각하고

다음에 오면 뭘 할까 상상하며

어두운 터널 같은 독일의 겨울을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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