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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우리 하루, feat. 독일

사소한 문화 차이가 부른 커다란 부부 싸움

투닥투닥이면서 사는 우리 부부가 자랑도 아니고...

가끔은 우리가 싸우는 사소한 그 이유들이 내가 생각해도 넘 유치하여 창피하거나

너무 사소해서 어느 하소연하기도 민망할 때가 있다.


지금 쓸 이야기는 그 정도는 아닌데,

문화 차이가 뭐야? 먹는 건가? 하면서 살다가

문득 이런 의외의 부분해서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사소한 문화 차이가 커다란 부부 싸움을 불렀다. ㅋ


그것은 바로 밥솥, 독어로는 쓰지 않고 우리가 처음 영어로 의사소통할 때,

쓰던 그 단어를 여전히 쓰고 있다. 라이스 쿠커.


토마스도 한식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밥을 좋아한다.

잡곡이나 뭐가 섞이는 것은

"으~으~음, 괜찮아. 그런데 패이보릿 아니에요."

라고 하면서 은근 거부한다.


밥은 좋아하지만 갓 지은 흰 쌀밥. 그 자체. 하.





처음 밥을 지을 때,

이런 보통 냄비 같은 거로 지었다.

가난한 미국 어학연수 시절에 이보다 더한 냄비에

뚜껑도 없던 물건으로 밥을 짓기 시작한 것이,

내 인생 최초의 밥 짓기였다.

그리고 냄비 밥에 은근 꽤 소질이 있었다. ㅋ


그때에 비해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수준이었기에

처음엔 여기에 밥을 했고

자주 먹지 않았기에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불 조절과 시간 조절을 잘못하면
쉽게 밥을 망치기 때문에 많이 불편하고 귀찮았다.



그래서 전기밥솥을 사자고 의견을 내고

설득을 시도해보았으나

번번이 싸우고 말았다.


여우처럼 은근히 남자를 구슬리는 설득의 기술이 없는

내 문제이기도 했지만,

냄비로도 문제없이 밥을 짓고

자주 먹지도 않는데

그런 기구를 사는데 200유로 가까이 돈은 낭비라는

그의 입장은 매우 확고했으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부부싸움을 거치고

급기야 나는 밥을 하지 않았다. ㅋㅋ


그런 몇 차례 시위 끝에 밥이 먹고 싶어진

토마스씨는 시댁 창고에서 독일식 압력 밥솥을 하나 찾아왔다.

WMF 메이커라서 그런건지 이십여년 전인데도 200유로 정도에 샀다는 독일식 압력 밥솥이었다.


살아 생전 시할머니의 취미는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다 모으는 것이었고

돌아가시고 나서 시엄마는 압력 솥이 필요없어서 거의 새것의 상태 그대로

창고에 보관중이었고 그것을 토마스가 시엄마에게 물어보고 냉큼 집어 온 것이었다.


냄비에서 압력 밥솥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당연히 밥맛은 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얼씬 좋아졌다.




그 밥맛을 본 토마스 씨는,

냄비 밥은 맛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다시 설득을 시작했다.

왜냐,

압력 밥솥으로 밥을 하면 밥맛만 좋아졌을 뿐,

불과 시간을 여전히 셀프로 조절해야하는

불편함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밥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 집 독일 남편이었다.




급기야 1년이 다 되도록 싸우고 내가 졌다. ㅠㅠ

독일에서 한국 *쿠 나, *첸 같은 메이커 제품들은 200유로 이상 줘야 구입 할 수 있고

다른 제품들은 한국에서 내가 사용하던

그 전기 압력 밥솥의 기능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대충 사고 싶지 않았다.

옷이나 가방에 명품을 잘 따지지는 않아도

밥솥 만큼은 브랜드를 사고 싶었다. ㅋㅋ



그렇게 압력 밥솥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한인 커뮤니티에서 전기밥솥을 파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중고 제품에 사용한 시간이 좀 되었던지라 30유로 정도

아주 저렴한 가격을 찾은 것이다.


토마스씨에게 보여주고 함께 물건을 사러 당장에 달려 갔다.

약 100km를 씽씽 달려서. 당장에 ㅎ


전기 압력 밥솥인 줄 알았다가 압력 기능이 없는 전기밥솥이란 말에

약간 실망을 했지만 고민 없이 바로 구입했다.





이놈이 그때 구입해서 업어온 그놈이고.

이놈을 얻고 나서 우리 부부는 주 4일 또는 그 이상

밥으로 식사하기 시작했다.


예약도 되고

쌀을 씻어 물만 맞추어 올려 버튼만 누르면

밥이 절로 되니

남편에게도 신세계였던 것이다.


심지어 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미리 밥도 다 지어 놓고

찌개 재료 준비까지 해 놓고

예쁘게 앉아서 기다리는 장족의 발전도 했다. ㅋㅋ





쿠쿠와 함께 한두해 보내더니

이제 한국 사람들에게 전기 밥솥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압력기능이 있는 밥솥은 비욘드 신세계라고 했다.

뒤늦게 결사 반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까지 했다. ㅎ

몰라줘서 미안했다며..


가격으로 치면 다운그레이드 인데 압력 밥솥에서

불,시간 조절이 필요없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업그레이드를 했다.


지금은?

한국 밥솥 찬양자다.


여전히 잘 밥을 하고 있는 밥솥이 있어서

새로 사고 싶은 내 희망은 여전히 무시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밥솥이 고장이라도 나면 기꺼이 우리는 밥솥을 살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많이 발전 했다고 본다. ㅋ



한번은 토마스가 반죽 기계를 사고 싶다고

하면서 가격을 말해줬는데 180유로 정도였다.

그것도 세일이 왕창 들어간.

좋은 제품을 사야 오래 쓴다면서 180이 제 기능을 하는 최저가라며.


나는 밥솥을 반대하던 그를 상기시켜 주며

가볍게 반대를 했다.

튼튼한 그대의 손으로 치대라며.


사실 우리 집도 요리를 주로 내가 하고

나는 서양식, 유럽식 요리를 전혀 못 하고

한다고 해도 미식가인 남편의 입맛에는 좀 허접한 실력이다 보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주로 한식이나 아시안식을 한다.


그래서 반죽기를 사도 별로 쓰지 않는다.

이거야말로 정말 돈 낭비라고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주 사용하든 안 하든 주방의 필수 기계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밥솥을 비유해서 설명해주었다.


너는 밥솥에 200유로가 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제 자주 밥을 해먹는데도 여전히 과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가 나고 자란 나라의 식습관을 포함한 문화의 차이이다.

그래서 가치 판단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다른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라고 결론지었다.



결혼이란 게, 그렇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결혼을 해도

수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맞추어 나가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이다 보니,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둘이 함께 양보하고 받아들이면서 맞추어 가야 하는 거다.


나 같이 다른 나라의 배우자라면 더 그런 것 같다.

오히려 커다란 부분에서는 의례, 문화의 차이나 생각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이 잘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밥솥처럼 뜻밖에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비록 압력 기능이 없어 아쉬운 전기밥솥이지만,

우리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고

부부싸움을 종결지었던 기특한 녀석이다.





덧> 꼭 재밌으라고 쓴 건 아니었지만

쓰고 보면 왜 이렇게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고 지루한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