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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김치 만들다가 아련해지면서 죄책감까지 느껴본 건 처음;;


얼마전에 3년 만에 한국다녀왔는데도 
돌아와서도 계속 한국음식만 먹고 싶다.
나이가 한살씩 들어가면서는 더욱 더 빵이나 피자같은 음식은 보기도 싫고..
그냥 오로지 밥에 반찬, 김치 이런 것만 좋은 거다.. 

그래서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무를 주문해서 김치를 했다.
휴가 때 엄마가 해주신 알타리 김치가 너무 맛있던 기억에 처음으로 알타리 무도 두 단이나 주문했고 
그리고 드디어 김치를 손질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반 이상이 이렇게 벌레가 먹어 있었다. 


그래서 김치 먹다가 벌레까지 같이 먹어서는 안되니까 

소름끼치고 징그럽고 그러면서 조심 조심 벌레 먹은 부분을 열심히 정리했다. 
벌레를 너무 너무 싫어하지만, 
김치는 한 조각도 넘나 소중하기에 열심히 정리하는데....

그런데...
그런데...
정리하다가..어느 순간 
막 죄책감이 느껴지고 뭔가 김치 만들면 안될 것 같고...기분까지 좀 멜랑꼴리해졌다. ㅠㅠ

얘를 좀 보세요. 


글쎄 벌레에 표정이 있었다 ㅠㅠ
저는 이런 아이 처음 봤다. 
좀 자세히 봐 보면.....,



얘 좀 보세요. 

완전 공포를 집어 삼킨 표정이다. 
막 나오려고, 자기도 살겠다고 꾸물꾸물 거리면서 기를 쓰고 기어나오는데.....
갑자기 왠 거대한 오징어가 자기 앞에서 자기를 보고 있으니까...
꿈틀거리던 몸이 경직되더니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_-

어떤 외계인이나 거대한 외계의 거인들이 우주에 사는데, 
그들은 우주를 떠다니면서 행성을 하나씩 오독오독 페레레로쉐 먹듯이 먹는다고 상상해 봤을 때,  
그런데 그 외계인이 어느 날 지구를 먹을라고 집었다고 상상해 보면, 
그들이 보기엔 벌레처럼 인간들이 지구에 붙어서 꾸물거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이런 상상이 되면서 이 벌레가 너무 아련하고 불쌍해가지고....
벌레들이 지나다닌 흔적을 최대한 피해서 잘 다듬어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잘 넣어줬다!

그곳은 행복하겠지. 
음식물 쓰레기도 많고, 그들이 안락하게 살고 있던 무 조각들도 많이 있으니까.... 

김치는 많이 했어도 총각김치는 처음 해봤는데..
참 힘든 하루였다.  

벌레에도 표정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게다가 겁에 질린 표정...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