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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n DE/어느 하루, feat. H 양

이름 바꾸고 온 날,

지난주에 이름을 바꾸고 왔다.

독일은 결혼하면 보통 여자가 남자 성을 따라 바꾼다. 

그래서 자녀가 생기면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모두 하나의 성을 쓰기 때문에 단체로 어딘가 이름을 기입하거나 여행을 다닐 때, 같은 성이라서 그룹처럼 꼭 붙어 다닌다. 

이건 좀 단편적인 예시지만,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성을 바꾸는 것이 보통이다.


꼭 남편 성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아내가 자기 성을 그냥 유지할 수도 있고 남편과 아내의 성을 - 로 연결해서 합성어를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나영과 원빈이 결혼하면 원나영, 원빈으로 하거나, 

이나영의 '이'와 원빈의 '원'을 합쳐서 성이 '이원' 또는 '원이'가 된다. 

둘이 성을 합치면 둘 다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이원나영, 이원빈 또는 원이나영, 원이빈, 이렇게. 


독일에서 내가 본 제일 예쁜 합친 성은 Voll-Kuss였다.

영어로는 full kiss 란 뜻이거든요. 발음은 '폴-쿠쓰'라고 하는데, 이 성은 발음도 뜻도 참 예쁜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을 합치면 이름이 더 길어지고 발음도 꼬이고 불편해서 잘 합치지 않는 편이다.

합쳐도 괜찮고 이상이 없는데다 부부의 의견도 맞는 경우엔 바꾸게 된다. 


이름은 아무 때나 막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결혼할 때 한 번, 결혼 후(관청에 혼인신고)에 원할 때 언제든 한 번, 이렇게 두 번 변경할 수 있다.

결혼할 때 이름을 변경하지 않더라도 이름 변경할 수 있는 기회 한 번은 이미 사라져서 혼인 신고를 하면서 이름을 변경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딱 한 번 이름을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결혼할 때 비자청과 시청에서 일이 좀 꼬이고 많이 지연되는 바람에 정신없이 결혼하게 된 케이스였고 결혼식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가서 한국식으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관청일, 비자일, 독일 혼인신고, 한국 결혼식 준비, 시부모님들 한국 방문 준비(여행 등)등등으로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서 당시 이름 변경을 하지 않았고 지난주에 이름을 변경하게 되었다. 


사실,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난 후부터 결혼을 하고 변경하는 하루 전날까지 엄청 오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많이 고민하고 신중하고 싶었고 이름은 그대론데 성만 바꾸면 그 자체로도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독일에서 이방인으로서 삶을 사는데, 이름은 더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었고, 성을 바꾼다고 독일인이 되는 것도 아닌데, 성을 바꾸려고 하니 이제는 한국인도 아닌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독일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느낌만 강해지는 거 같아서........


무엇보다 한국에서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우울하기까지 했다.

엄청 애국자도 아니고 한국에 미련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한국이니까.


그런데, 이번에 비자를 갱신하거나 영주권 신청을 해야 해서 그전에 그냥 변경하게 되었다. 

내 한국 성이나 남편 성이 둘 다 양국에서 흔한 성이 아니라 둘을 합치면 발음도 이상하고 뭔가 너무 어색해서 그냥 저의 성만 남편 성으로 바꾸었다. 

이름을 바꾸면 정체성도 괜히 흔들리는 기분이 들어 싫었는데, 의외로 홀가분하고 편하게 느껴져서 의외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므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다. 


독일은 관청일을 아직도 종이와 서류가 오가며 문서로 보관하고 관리하는 문화다. 

운전 면허증, 비자, 부부 족보(결혼하면 독일은 부부 족보 같은 걸 만들어 주는데, 거기에 결혼식부터 아이들 태어나거나 하면 관청과 관련된 가족의 역사가 기록되는 책), 은행 카드 등등 모두 바꿔야 한다. 

그런데, 괜히 조금 신기하다. 

그동안은 아이가 없어서 늘 가족이나 부부의 느낌보다는 친구 같은 동거인 느낌이 있었는데, 성을 바꾸고 나니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된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귀찮은 일은 많아졌지만, 더 단단하게 결속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이름을 바꾸고 나오면서 남편이 그러더라.


"여보. 이상해. 결혼을 한 번 더 한 거 같아."


그리고 덧 붙이는 말은 더 재밌다. 

한국법에 의해 한국에서 나는 여전히 원래 내 이름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나보고 이중인격자라는 것. 

하. 이중인격자 된 소감을 물어보는 엉뚱한 토마스 씨.


이름을 바꾸고 며칠 뒤에는 우편물이 하나 왔는데, 새 이름으로 왔었다.

괜히 신기해서 


"여보, 새 이름으로 우편물이 왔어. 뭔가 진짜 가족이 된 거 같아."

라고 했다.


내 말에 남편이 우편물을 쓰윽 보더니, 


"어? 새로운 이름으로 왔었네~ 난 왜 몰랐지? ㅋㅋ" 

라는 무심한 토마스 씨. 



그리고 그 날밤 나는 꿈을 하나 꾸게 된다.

평소에도 꿈을 정말 많이 꾸는 편인지라, 판타지 꿈도 꾸고 꿈과 같은 일을 겪게 되는 데자뷔도 경험해봤다. 

꿈을 많이 자주 꾸다 보니 낮에도 가위에 눌리고 악몽이나 호러도 많았다.

그래서 오래 자도 항상 피곤했는데, 신기하게 독일로 이주해오고 나서는 꿈을 거의 꾸지 않았다.

꾸긴 하는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꿈이 별로 없었다. 악몽도 거의 꾸는 일이 없어졌다. 


꿈을 꾸다가 나는 가끔은 화를 내거나 울 때가 있다. 

꿈에서 화내거나 울다가 깨는데 깨고 나서도 몇 분정도는 비몽사몽 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그 날은 꿈을 꿨는데, 오랜만에 한국엘 갔다. 

다 재건축해서 이제는 옛날 살던 집들은 없고 전부 변했는데, 꿈에서 나는 옛날 동네, 옛날 우리 집에 있었다. 


"와. 신기하다. 이 집이 아직도 있네."


하면서 재건축했는데, 아직도 동네가 있어서 신기하다며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갔더니 집에 아무도 없었고 거실 한쪽에 엄마가 내 물건들을 다 버린다고 한 쪽에 쌓아 놓으셨다. 

친구들이랑 주고받은 편지들이며 사진들, 제 옷, 가방, 신발, 예전에 쓰던 것들이 주욱 보였다.

너무 속상해서 손으로 다 주어 담는데, 모래처럼 담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다 빠지는 것이다. 

너무 슬퍼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오시더니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운다고 빨리 너네 집으로 가라며 떠미시더라. 안 간다고,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버티고 있는데, 이제 오지 말라시면서 빨리 독일로 가버리라고..

그래서 막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싫어! 나 한국 갈 거야. 한국에 있을 거야!" 


어찌나 큰 소리로 짜증을 내면서 소리쳤는지, 그 소리에 나도 깜짝 놀라서 잠이 깼다. 

자다가 혼자 벙져서 어이없어하는데, 잠귀가 밝은 남편도 내가 화내는 소리에 깨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어로. 


"미안해. 미안해요. 미안해. 그런데, 사랑해." 


음냐.. 음냐.. 하면서 자고 있었다.

놀라서 돌아보니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모로 누워서 웅얼웅얼 미안하다고 하는데 순간 얼마나 웃기던지..

자다 무의식 중에 대답하는데 한국어로 말해서 당황스럽지만 예쁘고, 뭐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보고 미안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가 요즘 짜증을 자주 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남편이 어제는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서 꿈 이야기해주니까, 


"우리 여보, 괜찮아. 우리 이제 곧 한국 가요."


하면서 자다가 우는 것보다 낫다고 하더라. 하하.

자다가 갑자기 막 서럽게 폭풍 오열하면서 깨면 꿈인걸 알면서도 남편도 엄청 놀라 깨서 다시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해주곤한다. 남편이 잠귀가 밝아서 신혼초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싸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남편의 밝은 잠귀가 새삼 감사해진다. 잠귀가 밝아서 내가 조금만 뒤척여도 잠이 깨서 초반에 한 침대에서 못 잘 것 같다고 많이 싸웠었다. 그래서 따로 자 보기도 했다.


"우리 롱디도 했고, 서로 너무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잠을 함께 잘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야."


어느 날, 이렇게 말하면서 무조건 함께 자자고 하더라.

그렇게 1년, 2년 익숙해지기 위해 남편이 노력했고 지금은 옆 자리가 비면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달라졌다. 

지지고 볶고 싸울 때 보면 인연이 아닌가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인연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오늘은 치과엘 다녀왔는데 치과 의사 선생님이 나를 막 아는 척하시더라. 

성을 바꾸니까 이제 막 사람들이 알아본다. 흔하지 않은 성이고 동네 병원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몸가짐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선 독일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감시카메라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있다.

독일은 CCTV 사생활 침해 문제로 잘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필요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낮이고 밤이고 둘러보면 꼭 창문 하나 열려 있고 거기에 걸터앉아 밖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성을 바꾸니 이런 불편함이 생겼다. 그래도 뭔가 가족으로 묶인 기분이 들어 좋은 것 같다. 


어차피 한국에서 나는 여전히 '나'니까. 

괜히 기분 탓에 정체성이니 뭐니 허세 부린 것 같은 느낌.

기분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역시 생각하는 대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